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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 전 엄마 입던 티셔츠 딸이 탐내는 이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로고를 더 크게 부각시킨 게스의 2017년 레트로 캡슐 컬렉션.

로고를 더 크게 부각시킨 게스의 2017년 레트로 캡슐 컬렉션.

주부 백은영(43)씨는 최근 옷장을 대대적으로 정리했다. 20대에 입었던 케케묵은 '게스' 티셔츠를 발견하고는 버리려는데 때마침 놀러온 중학생 조카가 냉큼 자기가 입겠다고 챙겼다. 백화점에서 본 신상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이유였다. 백씨는 "브랜드도 유행을 타기에 더 이상 못 입을 줄로만 알았는데 20년 전 옷이 젊은 애들 사이에 여전히 인기있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90년대 로고가 돌아왔다…더 크고 선명하게 #게스·휠라·타미힐피거 등 #스트리트 패션 대세에 부활 #

1990년대를 추억하고 재현하는 트렌드는 방송·음악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특히 패션은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90년대 전성기를 누렸던 브랜드들이 최근 잇따라 돌아오고 있다.
게스·휠라·타미힐피거데님·리복·노티카 등이 그 주인공으로, 당시 젊은이들이 유행을 좇아 무리해서라도 하나쯤 사들였던 캐주얼·스포츠 브랜드들이다. '무슨 메이커냐'가 또래 사이에서 과시의 수단이 됐던 당시 일부러 철자 하나 틀리게 박은 '짝퉁' 로고 제품이 무수히 쏟아져 나올 정도로 최고 인기를 얻었다. 그러다 럭셔리 디자이너 브랜드가 보다 대중화하고, 지극히 단순하고 절제된 미니멀 디자인이 대세가 되면서 맥을 추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1년 여 사이 부활의 움직임이 뚜렷하다. 브랜드마다 과거 히트 상품을 재현하며 10~20대를 공략하고 있다. 이를 위해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유명인이나 브랜드와 협업하며 이미지 쇄신을 꾀하는 한편 과거 비장의 무기였던 로고를 재활용, 더욱 극대화한 게 특징이다.

게스는 2016년 게스코리아 10주년을 맞아 지난 10년간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아이템을 선정한 ‘국민시리즈’를 내놓았다. 게스 본사 차원에서는 미국 힙합 아티스트 에이셉 라키(A$AP Rocky)와 협업한 '레트로 캡슐 컬렉션'을 선보였다. 게스 하면 떠오르는 역삼각형 안에 물음표 로고를 티셔츠·바지·천가방 등에 빼놓지 않았지만 티셔츠 길이를 대폭 줄이고 컬러를 더하는 식으로 업그레이드를 했다.

휠라의 로고인 F를 이용한 2017년 'ㅋㅋㅋ 티'

휠라의 로고인 F를 이용한 2017년 'ㅋㅋㅋ 티'

휠라 역시 2016년부터 러시아 디자이너 고샤 루브친스키, 미국 브랜드 얼반 아웃피터스 등과 협업하며 휠라의 대표 아이템을 재해석하는 '헤리티지 라인'을 잇따라 출시하고 있다. 브랜드의 알파벳 F자 로고를 전면에 박은 티셔츠를 1020 취향에 맞춰 'ㅋㅋㅋ 티'라 이름 붙이고 화이트·레드·네이비 등 다양한 컬러로 내놓은 것이 대표적이다. 또 음료 브랜드 펩시와 협업으로 펩시 로고까지 더한 스니커즈와 슬리퍼, 각종 액세서리 등을 만들기도 했다.

타미힐피거는 캡슐컬렉션 '타미진'을 선보이며 90년대 히트 아이템을 소환하는 중이다. 지난 시즌(2016 F/W)부터 브랜드 로고가 커다랗게 박힌 패딩조끼·비니에 이어 올 봄에는 후드티셔츠와 넉넉한 품의 청재킷 등을 대거 등장시켰다. 이러한 흐름에 맞춰 한동안 주춤하던 브랜드들도 후발 주자로 나섰다. 노티카는 올 초 크리에이티브 디자이너로 힙합 뮤지션이자 노티카 매니어인 릴 야티를 영입했고, 리복은 흥행 보증수표인 톱모델 지지 하디드를 모델로 기용하며 화려한 컴백을 예고하고 있다.

로고를 강조하면서 길이를 줄인 2017년 타미진 티셔츠. 

로고를 강조하면서 길이를 줄인 2017년 타미진 티셔츠.

이들 브랜드가 20년이 지나 새삼 다시 뜨는 이유는 뭘까. 거대한 패션 트렌드와 맞물려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 의견이다. 최근 캐주얼 감성의 스트리트 패션이 대세가 되면서 이를 바탕으로 성장한 브랜드들이 다시 주목받는다는 이야기다. 고태용 디자이너는 "프랑스 럭셔리 브랜드 루이비통과 미국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의 협업처럼 트렌드를 이끄는 럭셔리 브랜드에서조차 로고가 두드러지는 스트리트 패션과의 접목을 시도하고 있다"면서 "90년대 유행 브랜드와 아이템 자체가 지금 트렌드에 최적화돼 있다"고 말했다. 특히 로고·문구가 부각되는 넉넉한 티셔츠, 헐렁한 바지 등의 대대적인 등장 역시 역시 90년대 스트리트 패션을 지배한 힙합 스타일을 재현한 것이다.

또 요즘 패션계의 가장 큰 플랫폼이 되고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는 로고와 상표가 더욱 가치를 발휘한다는 점도 작용한다. 트렌드 분석기관 트렌드랩 506의 이정민 대표는 "주 소비층인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자)에게 크고 선명한 로고는 이미지 정보가 쏟아지는 온라인에서 한순간에 이목을 끄는 디자인"이라고 설명했다. 90년대 부의 과시 수단과는 또 다른 개성의 표현 수단이라는 의미다. 이 대표는 "대상 브랜드와 협업하거나 모델이 된 이들이 공통적으로 대중적 인지도에 비해 SNS에서 막강한 팔로어 수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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