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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성 없는 문체부 '사드 대책'

중앙일보

입력

200실 규모의 관광호텔을 임대해 운영하는 중국전담여행사 대표 A 씨는 지난달 한 지역 신용보증재단에 특례보증을 신청했다.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로 인해 3월 이후 중국인 단체 여행객이 거의 끊기면서 호텔을 임시휴업할 정도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저금리 특별융자가 있었지만, 심사까지 수개월이 걸려 급한 김에 재단을 찾은 것. 하지만 재단은 신청한 1억원만 가능하다 하더니 그마저 한 달째 심사 중이다.
A 씨는 “곤경에 처한 관광업계를 돕겠다며 정부가 이런 정책을 많이 내놨지만 정작 도움이 되는 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정부의 관광산업 지원 정책이 겉돌고 있다. 지원액을 뻥튀기하는가 하면 이미 실효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이 난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 지난 3월 22일 문체부 등 정부 부처는 ‘범정부 관광 시장 활성화 방안’도 그런 정책 중 하나다. 당시 문체부가 관광개발진흥기금 특별융자 1300억원(추후 2260억원으로 증액)을, 중소기업청은 긴급 경영안정자금 1250억원과 소기업·소상공인 특례보증 1000억원을, 금융위원회는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을 동원해 2000억원의 특례보증과 융자를 시행하기로 했다. 모두 6510억원이다.

그러나 본지가 확인한 결과 3월 22일 이후 한 달여 동안 여행업에 지원된 중기청 경영안정자금은 한 건도 없었다. 소기업·소상공인 특례보증은 438개 업체에 118억원이 지원됐지만, 이 중 여행업은 두 곳, 1억원에 불과했다.
중기청 관계자는 “대부분 음식점에 지원됐다”고 말했다.
신용보증기금 특례보증은 77개 업체에 143억원이 집행됐지만, 여행사는 24개 업체 44억원이었다.

문체부가 발표한 2260억원 특별융자도 업체들에 배정한 금액일 뿐 실제 대출액은 아니다. 대출 실행 업무를 맡은 시중은행이 심사하면 실제 대출액은 이보다 크게 줄어든다.
문체부 담당자는 “통상 특별 융자의 실제 집행률은 배정액의 60% 선”이라고 말했다. 2260억원 중 실제 대출은 약 1300억원에 이른다는 얘기다. 실제 대출액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배정액을 발표해 마치 대출액이 많은 것처럼 보이게 했다는 의혹이 이는 이유다. 문체부는 지난 2015년 메르스 사태에도 여행업계에 특별융자 대책을 내놓았다. 이 때도 배정액에서 실제로 대출된 금액은 59%였다.

중국 전담 여행사가 몰려 있는 서울 연남동 인근 한 시중은행 대출 담당자는 “특례보증을 신청한 중국전담여행사 20곳 중 보증서가 나온 곳은 한 곳뿐”이라며 “특례라고 하지만 보증료율을 낮추는 것 말고는 별다른 게 없다”고 말했다.
중국 전담 여행사 132개가 가입한 중화동남아여행업협회(IATA) 김종택(49) 사무총장은 “여행업 특성상 담보가 있는 곳은 거의 않다”며 “140여 개 중국 전담 여행사 중 특별융자를 신청한 곳이 35곳 밖에 되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라고 말했다. 애초에 대출이 안 될 것으로 보고 신청도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물론 아무리 정부돈이라고 해서 대출 자격이 안되는 이들에게 마구잡이로 빌려줘선 안된다. 문제는 실효성이 없을 줄 뻔히 알면서도 같은 정책을 반복하고 있다는 점이다.메르스 당시와 비교해도 금액 외엔 달라진 게 거의 없다.
한양대 관광학부의 이연택 교수는 “문체부가 자꾸 숫자에 집착하는 단기 대책을 내놓고 있다. 관광산업의 구조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중장기 대책도 함께 내놔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해외여행 시장 다변화’를 중장기 대책의 하나라고 소개한다. 정부는 ‘중국에 편중하지 말고 동남아로 가자’는 캠페인성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나 시장 과열 현상이 나타나는 등 벌써부터 역효과가 나고 있다.
 여행객 유치를 위해 최근 동남아를 다녀온 여행사 대표 B씨는 “동남아도 이미 덤핑이 만연해 있다”며 “이러다가 중국 시장처럼 될까봐 겁 난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는 C씨는 “기존 거래처에서 ‘한국은 왜 자기들끼리 제살 깎아먹는 경쟁을 하느냐’고 염려할 정도”라고 말했다.

여행업계는 보다 실질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있다.대표적인 게 ‘동남아 국가 무비자’다. 지난 2013년 일본은 센카쿠열도 분쟁으로 중국이 일본행 금지령을 내리자 ‘동남아 무비자’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했다. 이밖에도 특별융자·특례보증 자격 완화, 현재 고용노동부를 통해 지원되고 있는 고용유지지원금의 요건 완화 등을 바라고 있다.

이런 와중에 외국인 관광객은 눈에 띄에 줄었다.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지난 3월 한국을 방문한 외국인 관광객은 전년 대비 15만명 줄어든 123만3640명을 기록했다. IATA 측은 “동남아 관광객이 늘었다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중국인이 눈에 띄지 않아 생기는 착시 현상”이라고 말했다.

김영주 기자 humane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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