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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살 딸 죽음 이르게 한 엄마의 '악마와 동거'

중앙일보

입력

평범한 두 딸의 엄마였던 박모(43)씨의 인생이 파멸의 늪으로 빠져든 건 지난 2008년 대학 동창 백모(43)씨의 소개로 학습지 교사 이모(46)씨를 만나면서부터다. 박씨의 눈에 비친 이씨는 ‘신앙심이 깊고 재력이 있는 선생님’이었다. 이씨는 자신이 신으로부터 계시를 받으며, 안수기도를 통해 병을 고치는 ‘은사’가 있다고 박씨를 현혹했다.

'영적 능력' 신봉해 가족 연 끊고 집단생활 #'훈육' 내세운 체벌 끝에 큰딸 결국 숨져 #암매장 5년만에 덜미 잡혀 대법원에서 처벌 확정

신뢰가 쌓이자 이씨는 사업자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 박씨는 어머니 소유의 아파트를 담보로 잡고 자신의 전세보증금과 신용대출까지 긁어모은 돈 9억원을 건넸다. 이 때문에 남편과 사이가 틀어지자 이듬해 초 두 살, 다섯 살 난 두 딸을 데리고 집을 나와 이씨의 집에서 생활했다. 이씨의 집에는 동창 백씨도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와 살고 있었다.

가려진 진실, 가정 속 아동학대.[사진제공=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가려진 진실, 가정 속 아동학대.[사진제공=중앙아동보호전문기관]

이씨는 두 사람의 가족들이 찾아올 수 있으니 숨어있으라고 했다. 두 사람이 의지할 사람은 이씨뿐이었다. 2010년부터 경기도 용인의 한 아파트에서 집단생활이 시작됐다. 사회에서 완전히 고립되자 이씨는 서서히 두 사람 위에 군림하기 시작했다.

이씨는 두 사람의 아이들이 가구를 훼손한다며 매질을 하기 시작했다. 박씨와 백씨에게는 아이들을 때려서라도 교육을 시키라고 질책했다. 두 사람은 이씨의 지시대로 아이들에게 수시로 매를 들었다.

이씨의 강압은 점점 심해졌다. 매를 드는 날도 잦아졌다. 2011년 10월에는 아이들의 식사조차 하루 한 끼로 줄였다. 밥과 간장이 다였다. 쌀쌀한 가을 날씨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베란다에 가둬버렸다.

보름 뒤인 10월 26일 아침, 이씨는 박씨의 큰딸 A양(당시 7세)을 지목해 “너무 영악해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며 박씨에게 ‘교육’을 시키라고 지시했다. ‘제대로 때리라’는 의미였다. 박씨는 아이를 의자에 묶어놓고 온몸을 회초리로 때렸다. 뒤이어 이씨가 매질을 계속했다.

끼니를 제대로 잇지 못하고 오랫동안 폭행에 시달려 건강이 악화될 대로 악화돼있던 A양은 오후까지 계속된 매질을 견디지 못했다. A양이 혼절하자 이씨 등은 범행이 발각될까 봐 119에 신고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했다. 결국 A양은 그날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사인은 영양부족과 폭행으로 인해 체내 출혈이 동반된 외상성 쇼크사였다.

학대받은 아동의 멍과 질식을 상징하는 파란리본.

학대받은 아동의 멍과 질식을 상징하는 파란리본.

이씨와 박씨 등은 그날 밤 A양의 시신을 차에 싣고 3일 동안 전국을 돌며 암매장할 장소를 찾아다녔다. 결국 경기 광주시 초월읍의 야산에 시신을 묻었다.

이들의 끔찍한 범행이 드러난 건 그로부터 5년 뒤였다. 계모와 친부가 아이를 학대한 뒤 암매장한 ‘평택 원영이 사건’을 계기로 지난해 2월 장기 결석 아동에 대한 전수조사 과정에서 박씨와 작은딸은 천안시내의 한 막걸리 공장 숙소에서 발견됐다. 큰딸이 없어진 것을 수상히 여긴 경찰의 추궁 끝에 박씨는 범행을 자백했다. 검찰은 이씨와 박씨, 백씨 등을 살인과 사체유기, 아동복지법 위반 등 5가지 혐의로 기소했다.

1심 법원은 이씨에게 징역 20년, 박씨와 백씨는 각각 징역 15년과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했다. 범행을 돕거나 방치한 이씨의 언니와 백씨의 어머니에게는 징역 2년에 집유 3년, 징역 8월에 집유 2년을 각각 선고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숨진 A양의 어머니 박씨의 형량을 징역 10년으로 낮췄다. 나머지 항소는 기각했다. 이씨는 아이를 때리지 않았다며 범행을 모두 부인했다. 박씨는 심신미약 상태에서 저지른 일이라며 형을 낮춰달라고 상고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들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 1부(주심 김신 대법관)는 두 사람의 상고를 기각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이씨가 A양을 때리고 방치해 사망에 이르게 해 살인의 고의가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박씨에 대해선 의존성 인격장애로 인한 심신미약 상태였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징역 10년을 선고한 원심의 양형이 너무 무겁다고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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