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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작렬’ PC통신에서 대선후보 ‘짤’까지...대한민국 커뮤니티 30년사

중앙일보

입력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는 30여 년간 IT기술의 변천과 함께 ‘상전벽해’의 역사다. 전문가들은 1985년 시작된 PC통신 동호회를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의 뿌리로 본다. ‘치지직-삐이-띠디띠띠띠’ 하는 모뎀 접속 소리에 가족들이 깰까 마음 졸이던 시절이다. 통신 속도가 느릴고 데이터 비용이 비싸서 사진·동영상을 마음놓고 볼 수 없었다. 텍스트에만 의존하다 보니 오타도 많았다.

PC통신 나우누리 초기 화면 모습.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단조로운 배경과 문자가 중심이다. [중앙포토]

PC통신 나우누리 초기 화면 모습. 화려한 그래픽보다는 단조로운 배경과 문자가 중심이다. [중앙포토]

 접속 환경은 열악했지만 익명 뒤에서도 솔직한 생각을 털어놓는 공간은 당시 젊은층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모았다. 1997년 개봉한 영화 ‘접속’의 두 주인공(ID 하이엔드와 ID 여인2)이 유니텔 채팅창에서 일군 사랑이 동경의 대상이었고, ‘님’ ‘정모’ ‘번개’ 등의 온라인 언어가 파란 채팅창에 등장했다. 이용자들은 천리안·하이텔·나우누리·유니텔 등 이용하는 서비스에 소속감도 느꼈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때엔 ‘하이텔 자원봉사대’가 현장에서 피해자들을 도왔다. 대구 지하철 가스 폭발 사고 때는 방송에 나오지 않은 사고 소식이 한 학생의 PC 통신 글로 알려졌다.댄스그룹 듀스의 팬클럽은 가수 김성재씨의 타살설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초선이었던 1994년 PC통신 하이텔의 전자우편을 살펴보는 모습 [중앙포토]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초선이었던 1994년 PC통신 하이텔의 전자우편을 살펴보는 모습 [중앙포토]

정치권이 ‘온라인 민심’에 귀 기울이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다.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민자당과 민주당은 김영삼·김대중 후보를 홍보하기 위해 하이텔에 공개자료실과 토론방을 개설했다. 1990년대 중반엔 이른바 ‘의원 하이테크족’으로 불린 국회의원들이 PC통신을 통해 유권자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다음 카페, 아이러브스쿨, 프리챌, 디시인사이드(이하 디시) 등이 서비스를 시작한 1999년은 온라인 커뮤니티의 분기점이었다. 인터넷의 보급덕에 전보다 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드러낼 수 있게 됐다. 서강대 류석진 교수 등의 책『공동체의 오늘, 온라인 커뮤니티』는 “1990년대 PC 통신 이용자가 20대와 남성 중심이었던 반면 2000년대 들어 여성과 3040의 커뮤니티 이용률이 크게 늘었다”고 분석했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 참여한 '유모차 부대'가 행진하고 있다. [중앙포토]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반대 집회에 참여한 '유모차 부대'가 행진하고 있다. [중앙포토]

디시의 경우 디지털 카메라 매니어들이 사진을 올리고 품평하는 공간으로 시작해 현재는 연예부터 정치·사회 이슈까지 섭렵하며 대선 후보를 패러디한 ‘짤’과 전문적인 식견이 공존하는 커뮤니티 포털로 성장했다. 디시 이용자들은 2006년 황우석 교수팀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 2015년 국내 최연소 박사 학위의 주인공 송유근씨의 학위 논문 표절 의혹을 최초로 주장했다. 사회적 이슈를 끊임없이 생성하는 일베(일간베스트저장소)와 매갈리아도 디시인사이드 일간베스트 게시판과 메르스 갤러리에서 파생했다.
 2000년대 들어 결혼·육아·미용 등을 주제로 개설된 여성 커뮤니티는 2008년 촛불집회 때 이른바 ‘유모차 부대’가 탄생하는 배경이 됐다. 아이러브싸커(스포츠), 보배드림(자동차) 등 다양한 취향을 기반으로 한 커뮤니티가 가세하면서 커뮤니티는 무한 확산하고 있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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