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세대들에게는 생소한 얘기겠지만 한국영화를 보러가는 것은 ‘구린 취향’쯤으로 취급되던 시절이 있었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대학생이나 식자층은 팝을 듣고, 뽕짝 같은 가요는 시장통 음악쯤으로 폄하되기도 했다. 뭔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 얘기냐 싶지만 1980년대까지만 해도 그랬다. 당시 대학에 다니며 극장에서 본 한국영화는 손가락에 꼽을 지경이다. 한국영화는 늘 외화의 뒷전, 외화보다 하수였다. 88년 할리우드 배급사 UIP가 ‘위험한 정사’로 국내 직배를 시작하자 한국영화가 다 죽는다고 생각한 충무로 영화인들이 극장에 뱀을 풀어 가면서 이에 저항했던 연유다.
‘정의 상품’에 올인하는 충무로 #흥행은 얻어도 실험은 사라져
물론 그로부터 적잖은 세월이 흘러 어느덧 한국 관객은 극장에서 압도적으로 한국영화를 선호하는 시대가 됐다. 일년에 1000만을 모으는 한국영화가 1~2편씩 쏟아진다. 시장 규모만 커진 게 아니다. 해외영화제에서의 성과 등으로 대표되는 질적 성장 또한 눈부시다. 다음달 열릴 칸 국제영화제에는 미드 ‘하우스 오브 카드’ 등을 만든 세계적인 동영상 스트리밍 업체 넷플릭스가 투자 제작하는 봉준호 감독의 ‘옥자’가 홍상수 감독, 김민희 커플의 ‘그 후’와 함께 경쟁부문에 초청됐다. 홍 감독은 ‘클레어의 카메라’로 비경쟁부문에도 진출했다. 또 박찬욱 감독은 경쟁부문 심사위원이다. 모두 한국영화 브랜드 파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처럼 한국영화가 비약적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문화부 기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을 행운으로 생각한다. 박찬욱·봉준호·김기덕·홍상수 등 한국영화의 판 자체를 흔드는 재능 있는 감독들이 쏟아지고 관객수 1000만, 1500만의 불가능해 보이던 고지를 넘을 땐 함께 환호성을 올리기도 했다. 관객의 입장으로도 ‘한국영화가 세계 최고 자본력 할리우드 영화에 밀리지 않는다’ 혹은 ‘타성에 젖은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보다 낫다’는 굳건한 믿음으로 한국영화를 선택하곤 했다.
그런데 웬걸, 언젠가부터 한국영화 보는 게 심드렁해지고 있다. 최근 1~2년 사이의 일인 것 같다. 챙겨본 한국영화의 리스트가 급격하게 줄고 있다. 다음달 초 황금연휴를 맞아 충무로가 차린 밥상에도 딱히 입맛이 동하는 메뉴가 없다. 어느 정도의 질과 재미를 보장해 굳이 돈이 아까울 것까지는 없지만 제목과 배우군단, 영화 카피 문구만 딱 봐도 어디서 본 것 같은 기시감 100% 영화들에 대한 피로감이 온다. 재벌·정치권력 등 기득권은 악행을 일삼고 이에 맞선 정의의 분투와 승리를 드라마틱하게 그린 영화들이다. 2015년 1000만 영화 ‘베테랑’으로 시작해 26일 개봉한 ‘특별시민’에 이르기까지 일명 ‘사회적 분노 장르’ ‘정의상업주의 영화’들이다. TV라고 해서 크게 다를 것 없다. ‘법비(법률가도적)’를 다룬 ‘귓속말’, 의적 이야기 ‘역적’ 등이 이 계보다.
물론 이처럼 ‘정의상품’이 흥행의 키워드로 자리 잡은 것은 그만큼 한국 사회에 정의가 부재하며 정의에 대한 대중의 갈망이 크다는 것을 반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같은 사회파 영화들이 복잡한 현실 문제를 선악 이분법이라는 단순한 서사의 그물망에 넣어 붕어빵처럼 찍어대면서 문화적 상상력을 잃고 있다는 데 있다. 문화소비를 통한 현실갈등의 상상적 해소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한동안 한국 TV는 연애만 해서 문제라고들 했는데, 요즘엔 한국영화가 소시오패스 기득권의 악행 고발에만 올인해서 문제가 아닌가 한다. 문화가 가장 경계해야 할 획일화, 상투성의 문제 말이다. 그러고 보니 한국영화계에 진정한 문제작이나 문제적 신인의 출현이 뜸해진 지도 꽤 됐다. 하필 지난달 극장가에서는 외화가 한국영화를 밀어 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집계 결과 3월 극장의 관객 점유율은 한국영화 31.5%, 외국영화 68.5%였다. “요즘 한국영화는 너무 뻔해서 궁금하지 않다”는 주변의 얘기도 심심찮게 들려 온다.
한류 전문가인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홍석경 교수는 “한류의 위기라는 게 따로 없다. 한국의 드라마 팬들이 한국 드라마를, 한국 팬들이 한국영화와 K팝을 더 이상 찾지 않는 것 그게 진짜 한류의 위기”라고 말했다. 300% 공감한다. 한류의 위기가 시작된 건지도 모르겠다.
양성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