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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당 40회 접속' 프로그램으로 공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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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오늘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전화가 왔었습니다…트래픽 공격을 한 것이 적발되었다고요…그 당시에…여러 사이트를 돌다가 ○○사이트가 다운되어 간다는 소리를 듣고…미리 원서 접수를 하였던 저로서는…그만…실수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중략) 정말 그 죄가 큽니다…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되는데…그만 저만 잘해보자는 생각으로…그런 해서는 안 될 일을 저질렀습니다…(이하 생략)"

지난해 12월 28일 대입 정시모집 원서접수 대행사이트가 마비된 이면에 수험생 등에 의한 사이버테러가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일부 수험생이 경쟁률을 낮추겠다는 생각에 한 일이었다.

◆ 혼란스러웠던 당시 상황=28일 오전 9시쯤부터 원서접수 대행사이트에 접속 건수가 폭증하면서 인터넷 사용 속도가 느려지다 급기야 다운됐다. 원서접수 사이트 네 곳 중 '유웨이''어플라이뱅크' 등 두 곳이 연쇄적으로 마비됐다.

원서를 접수하지 못한 수험생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교육인적자원부와 대학에는 "피가 마를 지경"이란 하소연이 넘쳐났다. 다른 접수사이트를 이용하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이중지원을 하게 된 수험생도 속출했다. 대학별로 많은 곳은 이런 학생이 수백 명이나 됐다. 일부 수험생은 동일 모집군에 속한 두 대학에 동시 지원하는 일도 벌어졌다. 합격 취소 사유에 해당하는 중한 일이었다. 교육부는 부랴부랴 이날 마감 예정이던 원서접수를 하루 더 연장토록 대학 측에 권고했다.

◆ "공격하자 게시글에 1000여 명이 동참"=경찰 조사결과 이런 일이 벌어진 데는 1000여 명의 수험생 등의 자발적 참여가 있었다.

28일 D사이트 등 다섯 곳에 '서버를 공격하자, 일제 공격하자'는 글이 떴다. 원서접수 사이트에 초당 4~40회씩 접속하도록 설정된 프로그램 '방법 2006'도 링크됐다. 2003년 한국을 비하하던 일본 사이트를 공격하던 프로그램을 약간 수정한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공격하자는 게시글을 본 뒤 일제히 공격이 시작됐다"며 "28일 오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53만 건에 이르는 공격 횟수를 냈고, 1000여 명이 동시에 공격에 가담했다"고 말했다. 이번 일로 입건된 33명 중 단 한 명을 빼곤 모두 원서 접수를 한 뒤 사이버테러에 나섰다. 이들 중 한 명인 이모(18)군은 "경쟁률을 낮춘다는 소리를 듣고 재미 삼아 접속했다"며 "실제 다운될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다른 친구들에게 정말 미안하다"며 "내 동생에게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정말 끔찍할 것 같다"고 후회했다.

이들 중엔 또 원서접수를 마친 오빠를 돕기 위해 공격에 나선 고1 여학생이나 친구 두 명이 옆에서 접수를 위해 애쓰는 데도 공격 프로그램을 작동한 수험생도 있었다.

◆ "도덕성 교육 시급"=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심각한 것으로 보고 있다. 서울대 교육학과 문용린 교수는 "일부 수험생의 행위는 자신이 대학에 가기 위해 비도덕적 행위를 정당화한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정창우 교수도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행동이 타인의 행복과 밀접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걸 생각하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했다.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지적도 있었다. 여주대 교육학과 홍성훈 교수는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면 이런 행동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내 행동이 남에게 고통과 피해와 줄 건지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는 능력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고정애.이원진.권호 기자

처벌 어떻게 하나 …
교육부 "합격 취소" 대학선 "지켜봐야"

원서접수 대행 사이트에 대한 사이버 테러에 나서 입건된 수험생은 32명이다. 이들 중 단 한 명을 빼곤 모두 합격(예비합격 포함)했다.

경찰 관계자는 "연세대와 지방 의대 등에 합격한 우수한 학생도 많다"며 "특정 학과에 들어가고 싶은 욕심에 하루 전 등록을 마친 뒤 28일 서버를 집중 공격했다는 점에서 고의성이 더 강하다"고 말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이번 일을 용납하기 어려운 행위로 간주했다. 김화진 대학지원국장은 "지원 과정에서 상대방을 방해한 건 청소년으로서 아주 부도덕할 뿐만 아니라 도저히 있을 수 없는 행위"라고 말했다. 박융수 학무과장은 "이번 일은 휴대전화를 소지해 수능 부정행위로 판명된 수험생들보다 죄질이 더 나쁘다"며 "대학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만 합격자의 경우 입학이 취소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아직 입장을 정하지는 않았다. 고려대 김인묵 입학처장은 "그런 학생이 있다면 법적 결정이 난 뒤 처벌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형평성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240회 이상 공격한 인터넷 주소 이용자만 입건했기 때문이다. 경찰은 "법률적 검토를 끝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횟수가 작다고 잘못이 용서되는 것은 아니다"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하버드.스탠퍼드 등 엄격한 잣대
침투 시도만 해도 불합격

'비즈니스위크 사이트에 올라와 있는 대로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패스워드를 처넣었다. 채 5분이 안 걸렸다'. 그러나 이 탓에 하버드.MIT.스탠퍼드.카네기멜런.다트머스대 등 미국 최고 경영대학원 지망생 200여 명이 나락으로 떨어졌다.

지난해 3월 2일 비즈니스위크 온라인 사이트에 이들 대학의 입시관리 사이트('어플라이 유어셀프')에 침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글이 떴다. 이후 9시간여 동안 상당수의 지원자가 침투방법에 따라 입시관리 사이트에 접속했다. 입학 허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부분 지원자가 본 건 빈 화면뿐이었다.

대학들의 조치는 강력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은 사이트에 접속한 119명 전원에 대해 불합격 처리했다. 스탠퍼드(41명)와 MIT(32명), 카네기멜런, 다트머스대도 관련자의 합격을 취소했다. 가혹하다는 일각의 지적이 있었지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킴 클라크 학장은 "이번 행위는 모든 행위 중 가장 비윤리적이고 국제적인 리더를 배출한다는 우리 학교의 교육목표에 반하는 것"이라고 강경한 태도를 보였다.

*** 바로잡습니다

2월 11일자 10면 '초당 40회 접속 프로그램으로 공격'이란 기사 중 '28일 오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 53만 건에 이르는 공격 횟수를 냈다'는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중 오후 9시는 오전 9시이기에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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