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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르펜도 극좌 멜랑숑도 다 싫어” 소신과 전략 사이 흔들리는 표심 34%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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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김성탁 특파원, 프랑스 대선 유세 현장 가다

프랑스 대선 1차 투표일을 나흘 남긴 18일(현지시간) 파리 동북부 플라스 데 페트 시장 인근 카페. 노트북을 켜고 뉴스를 살피던 심리학자 폴(54)은 “23일 투표 때 찍을 후보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지후보 찍자니 당선 가능성 없고 #접전 중인 4인은 흠집 많아 망설여 #선거 나흘 앞인데 “기표소서 결정” #“차라리 백지 내고 싶다” 의견도

파리에서 고소득층이 많이 거주하는 서쪽은 우파인 공화당을, 상대적으로 중산층 이하가 많이 사는 동쪽은 좌파인 사회당을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다.

폴도 사회당의 브누아 아몽 후보를 지지해왔으나 지지율이 낮아 고민 중이다. 그는 “극우인 국민전선(FN) 마린 르펜과 극좌인 장 뤼크 멜랑숑이 당선되지 못하게 하려면 누구를 찍어야 할지를 고민 중”이라며 “소셜미디어를 통해 친구들에게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있다”고 말했다.

옆 테이블에서 식사하다 폴의 얘기를 들은 파트리스(66)는 “나도 아몽을 지지했지만 선거가 며칠밖에 안 남았으니 에마뉘엘 마크롱을 찍어야 한다”며 “다른 대안이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중도파 마크롱과 극우 르펜, 중도보수 공화당의 프랑수아 피용, 극좌 멜랑숑 등 네 명이 접전을 벌이는 프랑스 대선은 부동층의 선택에 따라 좌우될 가능성이 크다.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설치된 대선 벽보. 극우 국민전선(FN) 소속 마린 르펜 후보의 포스터(맨 오른쪽)에 누군가 검정칠을 해놓았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프랑스 파리 중심가에 설치된 대선 벽보. 극우 국민전선(FN) 소속 마린 르펜 후보의 포스터(맨 오른쪽)에 누군가 검정칠을 해놓았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여론조사기관 BVA의 최근 조사에서 1차 투표에 참여하겠다고 밝힌 유권자 중 34%가 아직 최종 지지 후보를 정하지 않았거나 지지 후보를 바꿀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쁠라스 데 페트 지하철역 앞에서 만난 메르샹(50)은 “르펜을 제외하면 나머지 후보들의 공약은 비슷한 것 같다. 하지만 르펜은 절대 지지하지 않는다. 투표하긴 할 건데 기표소에 가서야 결정할 것 같다”고 말했다.

파리 거리에서 부동층인 유권자는 쉽게 만날 수 있었다. 예닐곱 명 일행에게 물어보면 두세 명 정도는 지지 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선거 판세를 좌우할 부동층 유권자들은 ‘전략적 투표’와 ‘소신 투표’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었다. 상당수는 지지했던 정당의 후보에게서 하자가 발견되거나 지지율이 낮아 소신 투표를 하면 사표(死票)가 된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결선 투표에 진출할 가능성이 있는 후보에게 전략적 투표를 하자니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고 했다.

에펠탑 근처 부촌인 16구에서 만난 디디에(60)는 “투표장에 가서 백지 용지를 넣어 마음에 드는 후보가 없다는 불만을 드러내고 싶다”며 “그런 표가 별도로 집계가 안 되니 안타까울 뿐”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공화당 지지자인데 피용의 가족 보좌관 고용 의혹 때문에 마음이 안 간다”며 “극우와 극좌는 프랑스에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데, 마크롱 역시 뒷받침할 정당이 약해 당선되더라도 누구와 정치를 할지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고민에 빠진 유권자들 중에는 1차에서 소신 투표를 하더라도 2차 결선에서는 전략적 투표를 하겠다는 이들이 많았다.

프랑스 선거에서 1차는 가슴으로 투표하고 2차는 머리로 투표한다는 표현이 있는데, 이런 경향이 재현될 조짐이 보였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만난 적십자사 직원 마르코 산토스(33)는 현재 4강 구도를 형성한 후보 네 명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그는 “르펜은 과도한 인종차별주의자이고, 피용은 정치적 스캔들에 연루돼 있어 찍어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마크롱은 좌파도 아니고 우파도 아니어서 기회주의자 같고 선거 공약도 선명하지 않다”며 “멜랑숑은 너무 좌파여서 표를 줄 수 없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1차 투표 때 선명한 좌파 노선을 밝힌 사회당 아몽 후보에게 소신 투표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럼에도 산토스는 “잘못하다가 르펜에게 어부지리를 줄 수 있다는 걸 잘 안다. 2차 투표에선 그런 점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촌으로 꼽히는 파시 거리에서 만난 길다(77)와 테레자(66)는 “프랑수아 올랑드의 사회당 정부는 경제를 망쳤고 안전도 엉망이다”며 “공화당의 피용 후보에게 표를 줄 수밖에 없다”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이들은 “피용이 2차에 진출하지 않으면 누구를 찍을지 아직 정하지 않았지만 르펜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파리=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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