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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원도심을 감싼 예술 향기 … 붓으로 역사의 아픔을 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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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지난 3일 4·3미술제 전시장 중 한 곳인 제주시 ‘아트스페이스C’를 찾은 관람객들이 정용성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4·3미술제 운영위원회]

지난 3일 4·3미술제 전시장 중 한 곳인 제주시 ‘아트스페이스C’를 찾은 관람객들이 정용성 작가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4·3미술제 운영위원회]

제주 근현대사의 비극인 4·3사건을 추모하는 미술제가 제주 곳곳에서 막이 올랐다.

내달 7일까지 열리는 4·3미술제 #미술관, 문화공간 13곳서 동시진행 #민중미술 중심으로 작가 47명 참가 #4·3 사건 문제의식 현대적 재조명

탐라미술인협회는 “지난 3일 ‘회향(回向)’을 주제로 개막한 제24회 4·3미술제가 다음달 7일까지 제주도립미술관과 제주시 원도심 13곳 등 제주 14곳에서 열린다”고 18일 밝혔다. 회향은 얼굴을 돌려 다른 곳을 본다는 뜻으로 4·3사건의 흐름을 현대적인 시각에서 새로 조명하겠다는 의도를 담았다. 지난해까지 제주도립미술관에서만 미술제를 열었던 것과는 달리 올해 14곳으로 확대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미술제에서는 도내·외 작가 47명이 참여했다.

전시 장소는 제주도립미술관을 비롯해 아트스페이스C(중앙로), 이디아트(관덕로), 랩 모나드(중앙로), 각 북카페(관덕로), 더 오이 카페(관덕로), 간드락 소극장(관덕로), 향사당(중앙로), 비아 아트(관덕로), 황지식당(임항로), 남수각집 밖거리(동문로), 유성식품(관덕로) 등 제주 원도심 문화공간 13곳이다. 양은희 4·3미술제 예술감독은 “올해 미술제는 지난 69년간 아물지 않은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제주 전역에서 다양한 예술 방식으로 4·3을 추모하는데 초점을 맞췄다”고 말했다.

제주 원도심에서 열리는 미술제는 ‘공동체와 예술의 길’이란 부제 아래 오는 30일까지 열린다. 건물 입구에 동백꽃 문양을 바느질해 놓은 하얀 천이 걸려있는 곳이 미술제가 열리는 장소다. 제주 곳곳을 미술작품으로 채워 4·3사건에 대한 예술·사회사적 시각을 확대한 게 올해 행사의 가장 큰 특징이다. 비아 아트에 전시된 강문석 작가의 ‘수장(水葬)’은 바닥에 처박힌 돌덩이를 이용해 4·3 당시 바다에 장사를 지내야 했던 피해자들의 고통을 담았다. 사유진 작가는 유성식품 1층에 ‘제주:년의 춤’이란 영상과 설치작품을 출품했다. 여성 희생자들이 남편이나 자식을 잃고 통곡하는 아픔을 표현했다.

정문경 작가는 제주항 인근의 황지식당 건물에 종과 밧줄을 이용한 ‘멀미’란 작품을 냈다. 4·3 희생자들이 바다를 건너 육지의 형무소로 끌려가는 아픔을 담았다.

제주도립미술관에서는 ‘4·3미술아카이브:기억투쟁 30년 아카이브전’이 다음달 7일까지 열린다. 4·3사건 70주년을 앞두고 과거 4·3미술의 미술사적 위치를 재확인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는 1983~1993년 민중미술운동과 4·3미술의 배태(싹틈), 1994~1998년 4·3미술제의 본격화, 1999~2013년 4·3미술의 확장 등 세 단계로 나눠 4·3미술의 흐름을 짚었다.

다음달 31일까지 제주4·3평화기념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시도 4·3을 추모하는 행사다. ‘바람부는 날, 그때 제주’란 주제로 4·3미술의 공감대를 확산하기 위해 작가선정위원회를 별도로 꾸려 전시를 열었다. 강민석·강술생·김남흥·부상철·변세희·이성은 등 작가 26명이 4·3의 아픔을 표현한 작품을 출품했다. 변세희 작가의 ‘바람부는 날’은 가족을 잃은 빨간 치마 소녀의 정처없는 발걸음을 표현했다. 부상철 작가의 ‘붉은 벚꽃’은 아름다운 4월에 깊은 상처를 간직한 벚꽃을 표현한 작품이다.

탐라미술인협회 김수범 회장은 “제주를 찾은 외지 관람객들과 청소년들이 4·3과 제주 원도심에 담긴 근현대의 역사를 체험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최충일 기자 choi.choongi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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