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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매뉴얼에 잊혀진 소비자 권리

중앙일보

입력

유나이티드 항공

유나이티드 항공

탑승객 좌석을 강제로 회수한 유나이티드항공 사태 이후 항공산업의 규칙 우선 문화에 대한 반성이 나오고 있다. 안전과 보안 문제에 관해 규칙을 지키는 것은 당연하지만 상식에 어긋나는 규칙이나 매뉴얼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다 보니 소비자 권리가 침해된다는 지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항공업계 전직 임직원을 인용해 “항공산업은 안전과 밀접하게 관련되기 때문에 훈련이나 정비 등 업무의 많은 부분이 항공당국의 정밀조사 대상이며, 매사에 규칙을 엄격하게 지키도록 강제한다"면서 "룰을 지키지 않으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에 임직원은 매뉴얼에 없는 선택을 하기를 꺼린다”고 말했다.

당국이 요구하는 안전 등의 조치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규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고 매뉴얼에 의존하는 문화가 굳게 뿌리내렸다는 것이다.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 오스카 무노즈 유나이티드항공 최고경영자(CEO)가 “우리는 룰에 따라 일했다”고 언급해 소비자 분노가 더 커진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실제로 유나이티드항공 직원들은 항공기에서 자발적으로 내리려는 승객이 나타나지 않자 규정에 따라 컴퓨터에 접속해 항공권 가격, 마일리지 회원 등급 등을 기준으로 강제로 비행기에서 내릴 승객 명단을 추렸다. 선발한 4명 중 한 명이 이를 거부하자 공항 경찰대에 연락했는데, 이 또한 매뉴얼에 따른 행동이었다.

하지만 매뉴얼이 사소한 규정까지 반영하며 계속 두꺼워지지만, 정작 소비자의 설 자리는 없어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앞서 3월 말 유나이티드항공이 콜로라도주 덴버공항 탑승구에서 레깅스 바지를 입은 젊은 여성 두 명의 탑승을 불허한 사건도 매뉴얼에서 비롯됐다. 두 여성은 임직원 가족 항공권으로 비행기에 탑승할 예정이었다. 유나이티드항공 매뉴얼은 임직원 항공권을 보유한 경우 '라이크라 ㆍ스판덱스 소재의 상의, 하의, 원피스를 입고 항공기에 탑승할 수 없다'는 복장 규정을 두고 있다.

‘파일럿에게 물어보세요’ 블로그를 운영하는 현직 기장 패트릭 스미스는 “항공업계에서는 모든 일이 문서화되고 규정과 절차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이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는 데 직원들이 두려움을 갖고 있다. 두려움이 큰 나머지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않기도 한다. 권한이 하부로 이양되지 않다보니 직원들이 창의적인 사고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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