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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준생들의 'SNS 엑소더스' 왜?...페이스북 문닫는 청년들

중앙일보

입력

상반기 신입사원 공채를 준비 중인 취업준비생 문모(26)씨는 지난달 자신의 페이스북 계정을 비활성화했다. 계정을 비활성화하면 다른 사람이 접속할 수 없다. 문씨는 “이력서 작성을 앞두고 채용담당자가 문제삼을 수 있겠다 싶은 게시물을 하나씩 지우다가 ‘아예 접속을 차단하자’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 4월에 쓴 “세월호 사건을 보니 국가의 존재 이유가 뭔지 모르겠다”는 내용의 글, 지난해 강남역 살인 사건 당시 여성 혐오를 비판한 글을 지웠다. “너무 진보적으로 비칠 것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해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에 5번 정도 참가했던 대학생 김모(25)씨도 얼마 전 페이스북에 접속한 뒤 고민에 빠졌다. 촛불을 들고 친구들과 찍은 사진을 올릴지 말지 망설이다 게시글 작성을 접었다. 김씨는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정부를 비판하는 글을 사진과 함께 올리고 싶었지만 혹시라도 취업에 문제가 될까봐 하지 않았다”고 했다.

상반기 공채 시즌에 접어들면서 취준생들의 ‘SNS 엑소더스(탈출)’가 이어지고 있다. 게시물을 올리지 않거나 계정을 없애는 등 평소에 하던 SNS 활동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기업 인사담당자들에게 혹시나 ‘밉보일’ 만한 일을 최대한 하지 말자는 이유에서다.

취준생들은 인사 담당자가 응시자의 SNS 계정을 스크린 한다는 것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다. 문씨는 “노동권이나 복지, 젠더 등의 이슈에서 진보 성향 또는 페미니스트처럼 여겨지면 채용과정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실제 일부 기업은 채용과정에서 SNS 계정을 요구한다. 이랜드와 BGF 리테일이 대표적으로, 자기소개서에 SNS 계정 주소란을 만들어놨다. 한 대기업 인사팀 관계자는 “최종 면접 단계 정도에서는 한 번 정도 들어가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기업이 응시자들의 성향을 따져 논란이 된 경우는 종종 있었다. 아모레 퍼시픽은 2015년 11월 면접 중에 “국정 교과서에 찬성하느냐”는 질문을 던졌다가 논란에 휩싸였고,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채용 과정이 아니더라도 CEO의 발언이 취준생들에게 무형의 압박으로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11월 패션 브랜드 자라코리아의 이봉진 사장이 한 특강에서 촛불집회에 참여하는 청년들을 깎아내리는 취지의 말을 해 비판을 받은 게 대표적이다. 이런 상황이 겹치면서 SNS에 자신의 정치ㆍ사회적 견해를 자유롭게 쓰던 청년들이 문을 걸어 잠그기 시작한 것이다.

채용 과정에서 SNS를 평판 조회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 온당하다는 시각도 있다. 한 유통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전체공개’ 설정을 해 놓은 게시글은 말 그대로 전체공개다. 자기소개서의 한정된 정보 외에 지원자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기 위해 참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직무와 관계없는 개인의 생각과 일상이 채용에 영향을 미칠 경우, 청년들을 불필요한 자기검열에 빠뜨릴 우려가 크다고 지적한다. 권순원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이 아무리 직무중심 채용을 활성화한다고 해도 뒤에서 SNS 검열을 하는 것 자체가 응시자의 사고와 상상력을 제약한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안 맞는 행위인데다가 반 인권적이다”고 말했다. 해외의 경우 SNS를 통해 응시자의 정치적 입장 등을 확인하는 일은 없다고 한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미국 등에서도 간혹 평판 조회 목적으로 SNS를 참고하지만 이는 학력 위조 여부 등을 알아보기 위한 것에 국한된다”고 말했다.

‘SNS 사찰 논란’에 대한 사회적 논의는 아직 활발하지 않다. 국가인권위원회 관계자는 “SNS를 통한 사상 검증이 산발적으로 논란이 되긴 하지만 정식으로 진정이 들어온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구 교수는 “인권위나 고용노동부 등이 채용 과정에서 불공정하거나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 관행들을 더 들여본다면 소모적인 불안감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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