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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대우조선 P플랜 안 가는 게 손실 더 적다 판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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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동걸 산은 회장(左), 강면욱 국민연금 본부장(右)

이동걸 산은 회장(左), 강면욱 국민연금 본부장(右)

큰 틀에서 합의는 이뤘지만 막판 진통은 이어졌다. 국민연금은 산업은행이 만기 연장 회사채에 대한 상환 보장을 ‘확실한’ 수준으로 해 줄 경우 대우조선해양의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할 전망이다. 익명을 요청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14일 “연금 가입자의 손실 최소화를 위해 (국민연금은) 끝까지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오후 10시 현재까지 세부안을 놓고 국민연금과 산업은행 실무진 간의 협상이 이어지고 있다.

채무재조정안 수용 큰 틀 합의 #손실 2682억, 거부하면 3887억 돼 #3년만기 회사채 산업은행의 보증 #국민연금, 확실한 상환 장치 요구 #세부안 놓고 실무진 막판 줄다리기

아직 산업은행과의 협상안이 나오지 않은 상태라 최종 입장을 정하는 투자위원회를 거치지는 않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이 정도면 국민연금이 할 만큼은 했다고 인정할 만하다”며 “산은에서 최대한 받아내기 위한 협상 과정이었을 뿐 국민연금도 자율적인 채무재조정이 P플랜(프리패키지드 플랜, 초단기 법정관리)보다 손실률을 줄일 수 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채무재조정안을 수용하면 2682억원의 평가손실을, 거부해서 초단기 법정관리인 ‘P플랜’에 돌입하면 3887억원의 평가손실을 입는다.

산은과 국민연금은 지난달 23일 대우조선 구조조정 방안이 발표된 이후 줄다리기를 이어왔다. “국민연금 같은 회사채 투자자도 구조조정에 따르는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산은의 입장과 “전략적 투자자(SI)가 아니라 재무적 투자자(FI)로 회사채를 샀을 뿐인 투자자가 경영 실패의 책임을 떠안을 수는 없다”는 국민연금의 입장이 맞섰다.

산은은 시중은행을 비롯한 다른 채권단에 불만이 있었다. 앞서 4조2000억원의 자금을 수혈할 때 채권단은 책임은 지지 않고 이익만 챙겨 갔다는 ‘피해 의식’이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세금’으로 채권단이나 사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산은은 대우조선에 대한 지원 여파로 지난해 3조6411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했다. 함께 지원에 나섰던 수출입은행은 1조4873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창립 40년 만에 처음이다.

순조롭게 진행될 것 같던 구조조정이 암초에 부딪친 건 국민연금의 최근 사정 때문이다. 과거 같으면 국민연금은 ‘대우조선 같은 회사가 망하면 국가 경제가 흔들릴 수 있다’며 찬성표를 던졌을 것이다. 그러나 옛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둘러싼 의혹에 휩싸이면서 여론이 악화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의 구조조정안에 덜컥 찬성했다가는 ‘부실 기업에 2000만 국민의 노후자금을 동원했다’는 비판을 받을 게 뻔하다. 의사 결정권자들이 배임 혐의를 받을 수도 있다.

양측의 팽팽한 입장 차가 좁혀지기 시작한 건 13일 오후 양 기관의 수장인 이동걸 산은 회장과 강면욱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이 만나면서다. 대우조선 구조조정안이 발표된 이후 처음이다.

국민연금은 어느 쪽을 택하든 손실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끝장’ 협상으로 얻을 건 최대한 얻어냈다. 국민연금은 산은이 3년 만기 연장 회사채에 대한 상환 ‘보증’을 해 줄 수 없으면 그에 준하는 다른 안전장치를 원했다. 수주대금을 비롯한 돈이 생기면 안전한 별도 관리계좌(에스크로 계좌)에 입금하고, 상환은 이행확약서로 보장받았다. 이행확약서에는 상환이 불발되면 분식회계를 근거로 한 회사채 발행에 대해 소송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서면으로 작성된 이행확약서는 법정에서 중요한 증거가 된다. 산은이 이행확약서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이를 둘러싸고 협상이 지루하게 이어진 이유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단기적인 연·기금의 손실을 최소화하면서 국가 경제 발전을 통한 향후 연·기금의 증대 방향까지 고민해야 하는 게 국민연금의 책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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