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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먼 훗날에 … 시속 300㎞ ‘달팽이의 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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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2014년부터 엑스타 레이싱팀 감독겸 선수로 활동했던 김진표는 올해부터 감독 일에 전념한다. [우상조 기자]

2014년부터 엑스타 레이싱팀 감독겸 선수로 활동했던 김진표는 올해부터 감독 일에 전념한다. [우상조 기자]

‘가수·방송인·카레이서·레이싱팀 감독….’

가수·카레이서, 김진표의 두 인생 #학생 땐 차·음악 잡지가 교과서 #연예인 수입 80% 차에 쏟아부어 #취미였던 레이싱, 전문가로 전업 #선수 겸하다 이젠 감독만 맡아 #“팀, 스톡카 레이스 2연패시킬 것”

김진표(40)는 직업을 소개할 때 마다 곤란함을 느낀다고 했다. 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각해 낸 말이 ‘프리랜서’다. 그러나 그의 올해 직업은 금호타이어 엑스타 레이싱팀 감독이 가장 적합할 것 같다. 지금 시간과 애정을 가장 많이 쏟고 있는 일이다. 오는 16일 207 슈퍼레이스 챔피언십 개막을 앞두고 ‘감독’ 김진표를 만나 출사표를 들었다. 그는 ‘최고 속도’를 향해 질주하는 레이싱카처럼 거침없이 말했다.

김진표는 1996년 이적(사진 오른쪽)과 그룹 ‘패닉’을 결성해 가수 활동을 했다. [중앙포토]

김진표는 1996년 이적(사진 오른쪽)과 그룹 ‘패닉’을 결성해 가수 활동을 했다.[중앙포토]

김진표는 어릴 적 자동차를 병적으로 좋아했다. 그는 “좋아하는 차(르망 레이서)가 눈 앞을 지나갈 때까지 건널목에 한시간이 넘도록 서서 기다린 적이 있을 정도”라고 했다. 학창 시절 김진표의 교과서는 자동차와 음악 잡지 두 권이었다. 자동차 잡지에 소개된 차량의 제원표를 밑줄을 쳐가며 달달 외웠다. 1996년 ‘패닉’ 으로 데뷔한 김진표는 “차라리 ‘가수가 아니라 레이싱을 먼저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은 늘 있다”고 설명했다.

김진표는 2006년 이세창·류시원 등 먼저 레이싱을 시작한 연예계 선배들의 권유로 레이싱에 입문했다. 그는 “당시 차를 너무 좋아해 버는 돈의 80% 이상을 차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연예인 레이싱팀인 알스타즈에 들어간 김진표는 처음 참가한 대회에서 예선 1위를 차지했다. 결선에선 실수를 범해 3위로 떨어졌다. 하지만 연습 주행 5차례만 한 뒤 출전한 결과치고는 놀라웠다. 김진표는 “훌륭한 스승(오일기)을 만났고, 첫 대회부터 성적이 좋았다. 그 때부터 레이싱에 제대로 미쳤다”고 했다.

둘째 딸 규원양과 포즈를 취한 김진표. 그는 2014년 딸과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중앙포토]

둘째 딸 규원양과 포즈를 취한 김진표. 그는 2014년 딸과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았다. 김진표는 “당시 연예인 팀은 공공의 적이었다. 취미로 차를 타는데도 후원이 늘 붙었다. 당연히 전업 선수들은 우리가 못마땅했을 거다. 텃세도 심했고, 지나가는데 욕설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고 했다. 그럴수록 그는 연습에 매달렸다. 그는 “오기가 생겼다. 한 때는 매일 연습하기 위해 서킷이 있는 경기도 용인으로 이사갈 생각까지 했다”고 밝혔다.

지독한 연습을 한 결과 그는 전문 카레이서 사이에서도 돋보이는 기량을 갖게 됐다. 2009년 쉐보레 레이싱팀과 드라이버 계약을 맺었다. 취미가 부업으로, 또 부업이 본업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다. 그는 “레이싱을 하면서 스스로를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다혈질에 흥분도 잘하는 성격이었던 내가 운전대를 잡고 달라졌다. 흥분하는 순간 내 차는 느려진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박빙의 상황에서 추월이 일어나는 건 대부분 앞선 차량 선수의 멘털이 흔들렸기 때문이다. 멘털 싸움에서 이겼을 때의 쾌감은 아는 사람만 안다”고 했다.

2014년 금호타이어가 엑스타 레이싱팀을 창단하면서 김진표는 초대 감독 겸 선수가 됐다. 지난해 그는 슈퍼레이스 ‘6000클래스’에서 24명의 드라이버 가운데 7위를 차지했다. 4라운드에선 3위를 차지해 포디움(1~3위 시상대)에 오르기도 했다. 김진표가 지휘하는 엑스타 레이싱팀은 지난해 ‘6000클래스’에서 더블 챔피언(개인 정의철·팀 우승)에 올랐다. ‘6000클래스’는 국제자동차연맹(FIA)의 공인을 받은 아시아 유일의 스톡카 레이스로 국내에선 최상위 레이스다.

2015년 슈퍼레이스 개막전에서 시속 260㎞로 코너를 돌다 사고가 났다. 공중에 뜬 그의 차량. [중앙포토]

2015년 슈퍼레이스 개막전에서 시속 260㎞로 코너를 돌다 사고가 났다. 공중에 뜬 그의 차량. [중앙포토]

그는 잠시 운전대를 놓기로 했다. 김진표는 2015년 슈퍼레이스 개막전에서 시속 260㎞ 속도로 코너를 돌다 차량이 완파되는 큰 사고를 당했다. 당시 사고의 트라우마 때문에 운전대를 놓은 것은 아니다. 올해 그는 선수로는 대회에 참가하지 않고, 감독으로 팀 운영에 집중한다. 감독 김진표가 선수 김진표를 방출한 셈이다. 그는 “상위권 팀을 지휘하는 감독으로서 7~8등을 오가는 선수를 경기에 내보낼 순 없었다”고 했다.

김진표는 “시즌 개막이 다가오면 정신이 없다. 차량에 붙일 후원사 로고 사이즈까지 일일이 감독이 결정해야 한다. 티켓을 구입하고, 손님들 의전 동선을 짜는 일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보고서·제안서를 만들고 후원사를 찾아다니는 일도 그의 몫이다. 선수를 그만 뒀지만 연봉이 줄어든 건 아니다. 그는 “대기업 부장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고 했다.

엑스타 레이싱팀(정의철·이데 유지)이 참가하는 슈퍼레이스 ‘6000클래스’는 16일 개막전을 시작으로 8번의 레이스를 통해 우승자를 가린다. 김진표는 “나는 욕심이 많은 사람이다. 올해 목표도 당연히 더블타이틀이다. 또 한가지, 엑스타 레이싱팀을 모든 드라이버들이 선망하는 명문팀을 만들고 싶다” 고 했다.

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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