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기관이 밝힌 피납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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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도재승서기관은 9일 하오2시 준비된 원고를 갖고 귀국때와는 달리 여유있는 모습으로 피납생활, 석방과정, 앞으로의 계획등에 관해 소상히 밝혔다.
-억류기간중 서방국가의 언론인 인질을 목격했다는데 신원을 밝혀달라.
▲신분이 밝혀질 경우 개인에게 나쁜 결과를 초래할 우려가 있다. 정부방침에 따라 자료를 제공할 용의는 있으나 지금 공개할수는 없다.
-미국 AP통신 레바논지국장 「테리·앤더슨」씨, 영국 성공회특사 「테리·웨이트」신부, 서독인 「루돌프·코르데스」 프랑스인「로제르·오케」씨 등을 만난적이 있는가.
▲앞의 3명은 만난 적이 없다.
-어떻게 서방언론인 인줄 알았나. 또 그 서방언론인은 신체적 위협을 받지는 않았나.
▲한동안 같은 방에 함께 감금된 적이 있다. 납치범들은 인질들을 서로 만나지 못하게 다른 방을 사용하게 했지만 음식을 줄때와 화장실을 드나들 때 주변상황과 소리를 듣고 다른 방에도 몇명의 인질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납치범들은 규칙을 지키는 한 인질을 해치지는 않았다.
-억류중 정신적·육체적 건강유지는 어떻게 했나.
▲지난9월초 심한 감기와 습진을 앓았으나 자연 치유됐으며 큰 병은 없었다. 정신건강 유지를 위해 될 수 있는 대로 외부사정의 변화, 가족들의 생활, 앞으로의 대책등을 하루종일 생각했다.
-피납기간중 식사횟수와 메뉴는.
▲최초 2∼3개월은 하루 1회 손가락크기의 바나나 4개와 사과 또는 귤1개등으로 식사를 대신했다. 그후 2개월 동안은 하루 1회 넓적한 레바논빵 2개와 소형 고등어통조림 1통외에 때로 콩수프, 비프소시지, 삶은 달걀, 감자1∼2개씩을 제공받았다.
그후 사정이 좋아져 아침·저녁은 샌드위치나 빵, 점심은 쌀밥과 콩 또는 야채수프등 늘 변화있게 주었다.
-납치범들은 우리정부나 가족에게 편지쓰기를 강요하지 않았나.
▲석방을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해달라는 내용이 담긴 편지를 쓰라고 요구했으나 다른 목적에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판단돼 거부했다.
-피납기간중 억류장소 10여곳의 특징과 이동방법은.
▲두 곳은 10개의 감방이 있는 지하창고로 외부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으며 다른 두 곳은 3∼4개의 감방이 있는 1백∼1백50평정도 크기의 창고였다. 아파트 1층과 10층에도 한번씩 억류됐으며 이곳에서는 비행기 이·착륙소리가 들렸다.
억류장소들의 거리는 차로 10∼20분 정도였다. 범인들은 장소이동시 주로 나를 자동차 트렁크에 싣고 다녔으며 2∼3번은 밀폐된 소형트럭, 2∼3번은 승용차 뒷좌석에서 엎드린 채, 한번은 트럭 좌석 밑을 이용, 옮겨졌다.
-석방과정은.
▲석방 1개월전쯤 납치범들이 『교섭이 진행중이니 곧 석방된다』며 사진 찍기를 요구했다. 지난 10월26일에는 납치범들이 나를 차 트렁크에 싣고가다 중도에서 아말계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에게 인계, 다른 차로 한 개인아파트에 이송됐다. 그곳에서는 눈을 가리지 않았고 TV시청도 자유로왔으며 잠자리와 음식도 좋아져 석방시기가 임박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석방 당일에는 이들의 호송을 받아 승용차 뒷좌석에 타고 공항까지 간뒤 공항직원의 안내로 일반인 출구를 이용하지 않고 직접비행기안까지 직행, 혼자서 제네바까지 갔다.
-도서기관의 납치이유에 대해 기관원이거나 무기판매에 관계했을 것이라는 소문도 있는데.
▲73년2월 외무부에 들어온 이후 줄곧 외교관생활을 계속해왔을 뿐이다.
-외무부에서 또다시 레바논 같은 험지나 오지로 발령을 낸다면 응하겠는가.
▲외무공무원으로 재직하는 한 어디든지 갈 결심이다. 아직 근무처를 배치받지는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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