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만 붙으면 될 줄 알았는데"…'새춘기' 호소하는 새내기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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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쏟아지는 과제, 다가오는 첫 중간고사, 아직은 불편한 사람들…. 대학 새내기 A는 혼란스럽고 불안하다. 갑자기 찾아온 이 '짐'들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 지에 대해 그동안 다닌 학교나 학원에서 배운 적이 없다. 지긋지긋한 '입시 터널'만 지나면 캠퍼스의 낭만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 믿어왔는데 현실은 달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처음 찾아온 사춘기처럼 스무 살 A는 그렇게 '새춘기(새내기+사춘기)'를 보내고 있다.

대학 개강 후 한 달이 지난 요즘, 캠퍼스 곳곳에선 제2, 제3의 A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 막 성인이 된 다수의 대학 신입생들이 새로운 학업·진로·인간관계 등 갑자기 찾아온 변화로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감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은 마음이 예민해지고, 작은 일에도 쉽게 짜증이 나는 청소년 시기의 '사춘기' 증상과 유사하다. 으레 새내기라면 한 번쯤 느낄 법한 감정이지만 최근에는 이 새춘기 증상을 호소하는 새내기들이 더 많아졌다. 올해 서울의 모 대학 새내기가 된 김민주(19)씨는 "초·중·고 때는 목표가 '수능'에 맞춰진 채로 정해진 장소, 정해진 교재를 따라가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10년 넘게 혼자선 아무것도 못할 애로 만들어 놓고 대학에 가자마자 '니가 다 알아서 해'라고 하니까 세상 한 가운데 홀로 덩그러니 있는 기분이다"고 말했다.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누군가가 올린 '새춘기' 호소 글. [인터넷 캡처]

페이스북 페이지 '연세대학교 대나무숲'에 누군가가 올린 '새춘기' 호소 글. [인터넷 캡처]

특히 입학 후 첫 중간고사를 앞두고 새내기들은 혼란에 빠졌다. 올해 연세대 국제학부에 입학한 김혜진(19)씨는 "고등학교 때와 달리 스스로 답을 찾아야 하는 과제가 많아 부담이 크다. 길을 찾지 못하는 느낌이다"고 털어놨다. 원어민 수준의 영어 실력을 구사하는 학부 동기들에게 열등감을 느낄 때도 많다. 그는 "가끔 '내가 이러려고 이 전공을 택했나' 하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다른 새내기 조효정(19)씨는 "교수님들마다 학점을 주는 스타일이 다르다는데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몰라 답답하다"고 말했다. 서울 강남의 학원가에는 이들을 겨냥한 '학점관리반' 수업까지 생겨났다.

갑자기 확장된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느끼는 경우도 많다. 이 과정에 적응하지 못한 새내기들은 '아싸(아웃사이더의 줄임말)'를 자처하며 '혼족(혼자 다니는 사람)'의 길로 빠지기도 한다. 대학 신입생 방모(19)씨는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가하지 못했는데 개강 후 학교에 와보니 다들 친해져 있어 쉽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이제 대학 친구들과 꼭 가까워져야만 한다는 생각을 안 하게 됐다"고 말했다. 대졸자 취업의 문턱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각자도생'의 길을 택한 대학생들이 많아 새내기 입장에서는 조언을 해줄 만한 선배 '멘토'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염유식 연세대 사회학과 교수는 "요즘은 대학 자체를 또 하나의 학원이나 스펙 쌓는 도구로 생각하는 경향이 강해 학생들 간의 유대감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아직 본인의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이 시기에 급격한 환경 변화를 경험하면 심리적인 불안과 갈등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분석한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하버드대는 신입생이 들어오면 1년 동안 학교에서 재정지원을 해 진로 탐색의 기간을 갖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이런 제도를 한국에 당장 적용하긴 어렵겠지만 그만큼 학교 차원에서 새내기들에게 시간을 주고 다양한 상담 프로그램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인한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대학을 다음 번 직장을 위한 스펙 쌓는 곳으로 생각하지 말고 왜 자신이 대학에 들어오려 했는지, 대학 생활 자체의 의미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전문가들이 조언하는 '새춘기' 극복 Tip1. 나만의 문제가 아니다. 다른 학우들과 적극적으로 소통하라.2. 학교가 제공하는 상담 서비스를 활용하라.3. 부모ㆍ선배 등 멘토라고 여길만 한 사람에게 조언을 구하라.4. 당장 힘이 들면 한 학기 정도 휴학하는 것도 방법이다.5. 졸업 이후를 생각하기보다 현재 대학생활에 충실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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