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무역적자에 제조업 공동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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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누가 뭐래도 미국경제는 세계경제의 대들보였다. 이대들보가 흔들거리자 전체 세계경제가 뒤뚱거리고 있는 형세다.
파란의 진원인 미국경제는 과연 무엇이 문제고 얼마나 심각한 것인가.
우선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점이다. 「암흑의 월요일」(10월19일·뉴욕증시대폭락) 사태를 두고 『올것이 왔을 뿐』이라고 한 경제학자 「갤브레이드」의 말처럼 미국경제가 그동안 앓아온 문제들이 더이상 견디다 못해 곪아터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들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미국병의 대표적인 증상은 역시 쌍둥이 적자로 일컬어지는 막대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다. 갖가지 처방이 동원되어왔다. 돈을 풀어도 보고, 죄어도 보고, 또 금리를 올렸다가 내려도 보고, 하다못해 다른나라에 압력을 넣어 달러값을 대폭 떨어뜨리는 비상작전까지 동원하고 있지만 증상이 가시기는 커녕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증세다. 무역적자만해도 85년이후 달러값이 주요 11개국 통화에 대해 평균 32% 떨어졌음에도 84년의 1천2백24억 달러에서 계속불어나 금년에는 1천6백50억 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감기몸살 정도로 생각하고 해열제나 진통제에 해당하는 약들을 써봤으나 미국경제가 실제로 앓고있는 병은 그보다 훨씬 심각한 만성질환인 까닭이다.
미국은 이미 제조업의 나라가 아니다. 일자리로 따져 73%가 서비스업에 몰려 있고 제조업의 고용인구는 21%에 불과하다. 어느 백화점엘 가도 외제홍수 속에 「메이드 인 USA」는 찾아보기 힘들다. 의회자료에 따르면 석유를 제외한 국내 소비중에서 수입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37%에 이르고 계속 증가하고있다. 식료품을 제외하고 공산품쪽만 따지면 외제 의존도는 훨씬 높다고 봐야한다.
예컨대 TV·라디오는 66%(86년기준)가 외제고 신발류는 63%, 공작기계는 45%, 컴퓨터는 25%, 차동차는 28%가 수입품이다.
근장 뉴스위크지가 『기본적으로 미국인들은 외제가 미제보다 품질이 낫다고 믿고 있으며 따라서 값이 비싸져도 외제선호현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달러하락으로 수입상품 가격이 오르는데도 불구하고 외국상품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것이다.
요컨대 미국상품이 미국소비자들로부터 마저 외면당하는 현상으로 경제전반에 걸쳐 여기저기서 나타나고있는 것이다.
『그래도 이것만은…』하고 미국이 자부해온 첨단기술분야마저도 최근들어 큰소리를 못치게 됐다. 81년에는 2백70억 달러에 달했던 하이테크 부문의 무역흑자가 85년에는 40억달러로 뚝 떨어져버린 것이다.
이같은 고민들을 전체 경제구조면에서 살펴본다면 소위 「제조업의 공동화」현상으로 집약될수 있다.
미국경제의 엘리트 그룹인 하버드 MBA(경영학석사)들이 10년전에는 40%가 제조업을 택했으나 지금은 23%에 불과하다는 것도 제조업의 공동화현상을 반영해주는 한 예다.
여기에다 미국의 중산층자체가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주목을 끈다. 미국정부가 정의한 중산층은 가구당 소득이 연간 2만∼5만달러로 보고 있는데 이 중산층이 73년에는 전체 가구의 53%였던것이 84년에는 48%로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서도 소비는 소득을 앞질러왔다. 지난 10년간 근로자 1인당 소비증가액은 소득증가액의 3배가 넘는다.
벌이를 초과하는 쓰임새는 정부도 마찬가지다. 세금 폭에서는 감세정책을 쓰면서 막대한 국방예산과 사회보장예산을 지탱할 수 있는 방법은 빚을 지는 수밖에 없다.
결국 정부나 일반소비자나 벌이에 상관없이 쓰임새를 계속 키워온 결과가 다름아닌 엄청난 재정적자와 무역적자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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