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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도주범 검거보다 검경 기싸움이 중한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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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송승환 기자 중앙일보 기자
송승환사회2부 기자

송승환사회2부 기자

김대중 정부 시절 ‘최규선 게이트’로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최규선(57)씨가 지난 6일 구속 집행이 정지된 상태에서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다 도주했다. 병원 측에선 “오후 2시부터 최씨가 안 보였고, 검찰 수사관은 4시간 뒤 왔다”고 말했다. 최씨 신병을 책임진 서울고검에 이런 상황을 확인해 본지는 7일 인터넷 판에 “검찰이 경찰과 연계해 최씨를 추적 중”이라고 보도했다. 20분 뒤인 오후 8시쯤 경찰은 각 언론사에 “아직 검찰에서 협조 요청이 오지 않았다”고 알렸다. ‘경찰과 연계’라는 표현은 빼 달라는 의미였다.

도주 범죄자를 검거할 때 검경의 연계는 구두로 협조를 요청하고 수락해야 생기는 것이 아니다. 경찰이 기사를 정정해 달라고 요구한 시간에 검찰은 이미 전국 수사기관의 전산망을 통해 최씨를 지명수배한 상황이었다. 지명수배가 내려지면 범죄자를 검거해야 할 의무는 검경 모두에게 생긴다. 그 과정에서 검찰이 경찰에게 최씨의 유력 소재지와 도주 관련 첩보를 전달해 수사를 지휘할 수도 있고, 경찰이 불심검문을 통해 직접 검거할 수도 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찰이 굳이 검찰과 선을 긋고 나선 것은 최근 수사권·기소권 조정 문제와 관련한 검경의 신경전 때문이라는 것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최근 검찰이 일선 경찰 간부들을 잇따라 뇌물수수 혐의 등으로 입건하자, 경찰이 모 검사장의 친동생을 사기 혐의로 수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최씨가 도주 중이던 이날은 특히 예민한 날이었다. 오전에 김수남 검찰총장은 서울동부지검 신청사 준공식에서 “검찰은 경찰국가시대의 수사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준사법적 인권옹호기관으로 탄생한 것”이라고 작심 발언을 했다. 오후에 황운하 경찰청 수사구조개혁단장은 기자간담회에서 “검찰은 국정 농단 사태의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다시 대검은 오후 7시 “황 단장의 도를 넘은 발언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는 입장을 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지는 우리 사회와 국민의 안위에 직접적 영향을 미치는 정책적 이슈다. 대선 국면에 논쟁거리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측면도 있다. 하지만 그 결론이 이해 당사자인 검경의 힘겨루기 결과물이 돼선 곤란하다. 권력 공백을 틈탄 장외 설전, 흙탕물 튀기기식 수사, 언론 플레이는 볼썽사납다. 정치권이 테이블을 만들고 그 위에 선택 가능한 방안을 올려놓은 뒤 검찰·경찰·전문가 등이 머리를 맞대고 논의해야 한다. 문제의 핵심과 장단점을 국민에게 차분하게 알리는 작업도 이뤄져야 한다.

도주한 최씨의 행방은 계속 오리무중이다. 검경이 치고받는 사이에 벌어진 이 같은 치안 공백은 누가 책임질 것인가.

송승환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