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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민연금을 위한 3가지 변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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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고란경제부 기자

고란경제부 기자

또 국민연금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을 한 것 때문에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받았다.

이번엔 대우조선해양 때문이다. 어쩌다 보니 국민연금이 이 회사 구조조정의 키를 쥐게 됐다. 하지만 최순실 게이트에 휘말렸다는 ‘원죄’ 탓에 여론은 따갑다. 이쯤이면 뭘 해도 욕먹는 국민연금을 위한 변명도 필요하지 않을까.

첫째, 국민연금이 왜 대우조선 회사채를 샀느냐는 의문이다. 총 3887억원어치를 들고 있는데 2012~2015년에 발행된 회사채다. 모두 당시엔 투자 가능 등급(AA-~A+)이었다.

둘째, 분식회계가 드러났는데 왜 팔지 않았느냐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015년 분식회계 사실이 알려진 후 대우조선의 신용등급은 급락했다. 순식간에 투기 등급이 됐다. 장내 채권 시장은 거래 규모가 워낙 작다. 국민연금의 물량을 소화해 줄 수 없다. 그런데도 국민연금이 채권을 내놓았다면 팔지도 못한 채 가격은 폭락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들 채권에는 부채비율이 500~800%를 넘으면 조기상환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붙어 있다. 국민연금은 2015년 9월 대우조선에 회사채 상환을 요구했다.

그러나 대주주인 산업은행은 “국민연금이 상환해 가면 다른 채권자도 동시다발적으로 상환을 요구할 테고, 그러면 회사가 부도날 수밖에 없다”는 공문을 보냈다. 회사가 부도나면 투자자가 건질 수 있는 돈은 극히 적다. 국민연금은 산은을 믿었다.

마지막으로, 대우조선의 미래에 대한 책임이 국민연금에 있다는 오해에 대해서다. 망해 가는 기업을 살리는 데 국민의 노후 자금이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게 여론이다. 채무조정안에 반대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는 국민연금의 반대로 대우조선이 초단기 법정관리(P플랜)에 들어가면 손실 규모가 더 커진다고 압박한다. 나이스신용평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현재의 채무조정안을 받아들이면 2682억원, 거부하면 3887억원의 평가손실을 입는다.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익명을 원한 국민연금 관계자는 “연금 가입자에게 최선이 무엇인지가 유일한 고려사항”이라고 말했다. 국민연금은 회사채 투자자일 뿐이다. 대우조선의 운명이 국민연금에 달렸고, 결과에 대한 책임이 국민연금으로 귀결되는 지금의 프레임이 무척 억울하겠다.

억울해 하지 마시라.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선량한 관리자로서의 의무를 충실히 다한다면, 무조건 응원할 테니. 차후 불거질 책임론 회피에만 급급한 모습이 간간이 보여 노파심에 하는 말이다.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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