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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명현의 별 이야기

인공지능 문화시대를 기대하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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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

얼마 전 일본에서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들끼리 격돌하는 바둑 대회가 열렸다. 이세돌 9단을 이겨서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른 ‘알파고’는 이 대회에 참가하지 않았다. 이 분야 최강인 알파고를 따라잡으려는 다른 나라의 인공지능 프로그램들이 참가해 벌이는 경연장이었다. 중국에서 만든 ‘줴이’가 우승을 차지했고 우리나라에서 개발한 ‘돌바람’은 8강 진출에 만족해야 했다. 사람마다 흥미를 갖고 지켜보는 지점이 다르겠지만 나는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들끼리 만들어낼 그들만의 바둑 문화가 궁금하다. 알파고도 그렇고 줴이도 그렇고 처음에는 인간들이 만들어낸 바둑 문화의 산물인 기보를 보고 바둑을 공부했을 것이다. 알파고가 연습 과정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들끼리 바둑을 두면서 인공지능들끼리의 대국에서 만들어진 기보를 생산할 것이다. 이번 대회를 통해서도 많은 기보가 생산됐다. 어느 시점부터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들은 인간의 기보가 아닌 인공지능 프로그램들 사이의 대둑의 결과인 기보를 바탕으로 학습하기 시작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그들만의 독특한 바둑 문화가 우리가 인지할 정도로 패턴화돼서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만의 바둑 문화의 태동이다.

소설 영역에서도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인공지능이 쓴 소설이 일본의 ‘호시 신이치’ 문학상 공모전에서 1차 심사를 통과한 것이었다. ‘컴퓨터가 소설을 쓰는 날’과 ‘나의 직업은’이라는 제목을 단 소설들이다. 이들 소설의 주인공은 인공지능인데 일인칭 시점으로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묘사하면서 이야기를 전개한다. 물론 여전히 짧은 분량의 소설이고 소설을 쓰기 전까지의 준비 단계에서 인간의 개입이 많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얼마 전에는 인공지능 ‘제로’가 쓴 소설 ‘현인강림’이 출판되어 판매되고 있다. 인공지능 소설가는 어떤 마음으로 소설을 썼을지에 대한 상상을 담은 책이 출간되기도 했다. 역시 일본에서 벌어진 일이다. 인공지능 바둑의 경우처럼 인공지능 소설 분야에서도 그들이 쓴 소설을 그들이 읽고 학습해서 소설을 쓰는 시대가 올 것이다. 인간 종의 소설 문화와는 다른 그들만의 소설 문화가 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인공지능이 만들어낼 그들만의 문화를 두려워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는 오히려 인간 종 이외의 다른 종이 만들어낸 지적 유희를 엿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아서 신이 난다. 독립적인 두 개의 지적 생명체가 벌이는 문화적 유희를 향유할 날을 기대해 본다.

이명현 과학저술가·천문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