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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만 달라졌나 속도 달라졌나 '유시민의 변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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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03년 면바지 등원
유시민 의원이 2003년 4월 29일 국회에서 의원선서를 하기 위해 면바지에 라운드티를 입고 등단할 때의 모습. [중앙포토]

2006년 깍듯한 인사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가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의원들에게 공손하게 인사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입각설이 돌아 곳곳에서 저를 문제삼고 있던 지난 연말 한 송년회 모임에서 누군가가 '스타일 좀 바꿔보라'고 했다. 그때 옆에 있던 이창동(영화감독) 전 장관이 '스타일이 아니라 마음을 바꾸라'고 충고했다. 명배우의 표정은 연기가 아닌 내면의 진정한 변화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라고도 했다."

'유시민의 변신'이 세간의 화제가 되고 있는 가운데 8일 오전 의원회관에서 만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자신의 변화 계기를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또 "이 전 장관은 '장관을 해보니 마음이 따뜻해야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여야 일을 제대로 할 수 있더라'라는 조언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평소 같으면 그냥 스쳐갈 이야기가 가슴 한구석을 깊이 찔렀다"고 했다.

유 후보자는 "당시 마음고생 때문인지 잇몸이 상해 수술을 받았고 지난달 4일 아내 고향인 제주도의 한 양식장으로 가 3일 동안 빈둥거리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유 후보자는 장관 지명을 받은 지난달 4일부터 수일간 종적을 감췄었다.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말을 듣지만 대통령을 직접 모신 적이 없어 장관이 된다면 처음으로 '부하'가 되는 것"이라며 "어떻게 하면 부하 노릇을 잘 할까 생각을 했고, 그래서 마음부터 달라지기로 결심했다"고 덧붙였다.

청문회를 계기로 유 후보자의 스타일은 분명히 변해 있었다. 8일 이틀째 인사청문회에서도 야당 의원들의 질문과 추궁에 그는 "그런 일이 없도록 노력하겠다""명심하겠다"는 등 내내 겸손한 태도를 유지했다. 유 후보자의 변화는 단순히 그의 설명대로 이 전 장관의 충고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그의 변화는 어디서 시작된 걸까. 가장 설득력 있는 얘기는'노 대통령의 충고가 변화의 원인'이란 분석이다.

노 대통령은 이달 초 한 열린우리당 초선의원과 가진 청와대 만찬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유 후보자가) 잘할 수 있을까 걱정이다. 예전에는 그러지 않았는데 언제부터인가 언론을 통해 보면 남을 조소하고 조롱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여론의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밀어붙였던 유 후보자에 대한 지적치고는 강도가 높다. 노 대통령은 유 후보자에게 직접 충고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유 후보자 자신도 "대통령에게서 여러 차례 말과 행동의 문제에 대해 지적받았다"고 시인했다. 여권 핵심 인사는 "대통령이 유 후보자를 장관으로 밀어붙인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면서 "당내의 공격이 거세고, 어느 정치인보다 분명한 지지층과 비판층을 가진 그가 이번에 장관으로 임명되지 못할 경우 결국 정치생명이 끝날 수밖에 없다는 고민이 작용했다"고 설명했다. 이 인사는 "(대통령이) 벼랑 끝에 선 그의 손을 청와대 핵심참모들의 건의를 외면하면서까지 잡아줬다는 점에서 유 후보자는 급격한 변화를 통해 노 대통령의 기대와 구상에 부응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의 변신을 의심하는 눈초리도 적지 않다. 자신에 대한 당 안팎의 비판과 청문회 등의 고비를 넘기기 위한 '변장'이라는 시각이다. 한 야당 의원은 "명석한 두뇌를 가진 후보자가 일단 몸을 낮추는 전략을 세웠지만 막상 장관이 되면 어떻게 달라질지 알 수 없다"며 "방송토론회 사회자 출신답게 외양을 어떻게 꾸며야 상황에 도움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열린우리당 한 인사도 "유시민은 위기상황에 엎드릴 줄 아는 사람"이라며 "참여정부에서 누구보다 노 대통령으로부터 혜택을 받은 정치인인 그가 여기서 더 튀면 결국 모든 부담은 노 대통령에게로 돌아간다는 점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지만 장관직을 수행하면서 어떻게 원상복귀할지는 두고 볼 일"이라고 말했다.

열린우리당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언급했던 것처럼 유시민 장관 기용 배경이 여권 내 차기 지도자그룹의 육성에 있다면, 유 후보자가 장관직을 어떤 스타일로 어떻게 수행해 나가느냐에 따라 여권 내 리더그룹에 포함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이 관계자는 "현안이 쌓여 있는 보건복지부 정책을 어떻게 풀어가느냐에 따라 전직 장관이었던 김근태 의원과 곧바로 비교되는 정치적 효과까지 누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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