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잡 안 쓴 메이 총리…히잡 썼던 박근혜 전 대통령

중앙일보

입력

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에 도착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

4일(현지시간) 사우디아라비아를 방문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히잡(머리 스카프)을 하지 않아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우디 외교부의 조언에도 메이 총리는 현지 여성이 입는 망토 모양의 의상이나 히잡을 두르지 않고, 정장 바지 차림으로 사우디 공항에 내렸다.

사우디 방문 테리사 메이, 히잡 안 써 화제 #대부분 서구 여성 지도자들 히잡 착용 안 해 #‘여성 억압 상징’ vs ‘이슬람 문화 존중’ 논란

 이슬람 전통이 강한 사우디에서는 여성의 경우 공공장소에서 아바야(얼굴과 손발을 제외한 온몸을 가리는 망토 모양의 의상)를 입고, 머리엔 히잡이나 니깝(눈만 남기고 얼굴 전체를 가리는 스카프)을 착용해야 한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이후 중동 주요국과 새로운 무역 관계를 논의하기 위해 이번 중동 순방길에 올랐다. 때문에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히잡을 착용할지 관심이었다. 하지만 메이 총리는 소신을 택했다. 서구에선 히잡이 여성 억압의 상징이란 인식이 팽배하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메이 총리는 전날 요르단 수도 암만으로 향하는 전용기에서 기자들에게 “여성이 자동차 운전을 할 수 없고 여행ㆍ결혼ㆍ치료를 받으려면 남성 보호자의 허가가 필요한 나라에서 나는 강력한 정부를 이끄는 여자 리더로서 모범을 보여줄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는 여성이 성취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여성이 어떻게 중요한 자리에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강조했다.

1985년 사우디를 방문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1985년 사우디를 방문한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메이의 선택은 과거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는 차이가 있다. 1985년 사우디를 공식 방문한 대처 전 총리는 긴 드레스 차림에 머리에는 모자를 썼다. 나름대로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다만 메이 총리도 종아리가 노출되는 치마 대신 긴 바지를 입어 최소한의 예의를 표시한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에선 외국인이라도 여성은 반 소매나 다리가 보이는 길이의 치마를 입으면 안 된다.

미 CNN방송은 “히잡을 두르지 않은 것은 메이 총리가 처음이 아니다. 최근 몇년 간 사우디를 방문한 외국 여성 지도자, 퍼스트레이디들의 전례를 따랐을 뿐” 이라고 지적했다. 힐러리 클린턴ㆍ콘돌리자 라이스 전 미 국무장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 여사,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부인 로라 부시 여사 등이 대표적인 예다.  

2012년 사우디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2012년 사우디를 방문한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2010년 사우디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2010년 사우디를 방문한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지난해 5월 1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 이란식 히잡 ‘루싸리’를 두르고 테헤란 메흐라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중앙포토]

지난해 5월 1일 이란을 국빈 방문한 박근혜 전 대통령. 이란식 히잡 ‘루싸리’를 두르고 테헤란 메흐라바드 공항에 도착했다. [중앙포토]

 이들과 달리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이란 방문 때 히잡을 착용했다. 머리와 어깨를 감싸는 ‘루싸리’였다. 특히 이란인이 가장 좋아하는 색깔인 흰색 루싸리를 둘러 이슬람 문화를 존중하는 모습을 강조했다. 하지만 외국인에겐 히잡 착용을 강요하지 않는 상황에서 박 전 대통령이 히잡을 두른 것을 두고 “여성 대통령이 여성을 억압하는 도구를 흔쾌히 착용했다”며 굴욕적 외교라는 비판도 제기됐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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