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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회록 써야 할 사람이 변명록 … 광주 5월 영령에 또 상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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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 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 전 대통령과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순자씨. [중앙포토]

1981년 10월 옥포조선소준공식에 참석한 전두환전 대통령과 당시 영부인이었던 이순자씨.[중앙포토]

전두환(86) 전 대통령 부부가 최근 잇따라 출간한 회고록 때문에 광주 지역사회가 들끓고 있다. 1980년 광주 5·18민주화운동의 가해자로 지목돼 온 당사자가 자신을 ‘5·18 희생자’로 표현해서다. 광주 지역 5월 단체들은 부창부수(夫唱婦隨) 격으로 나란히 5·18에 대한 책임을 회피한 부부에 대해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전두환 부부 회고록에 광주 부글 #“우리도 희생양”“무차별 살상 없어” #일방 주장에 5월 단체들 분노 폭발 #“내란 범죄자의 파렴치한 거짓말 #법적 판결, 역사적 진실까지 무시”

전 전 대통령은 지난 3일 출간한 『전두환 회고록』(자작나무숲)에서 자신을 ‘5·18의 치유와 위무를 위한 씻김굿의 제물이 됐다’고 표현했다.

또 ‘5·18의 충격이 가시기 전에 대통령이 된 게 원죄가 됨으로써 십자가(제물)를 지게 됐다’고도 주장했다. 자신이 5·18 직후 대통령이 됨으로써 5·18의 상처를 치유하는 희생양이 됐다는 의미다.

하지만 이같은 주장은 검찰 조사와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이어서 논란이 일고 있다. 대법원은 1997년 4월 5·18과 12·12 사건에 대한 확정판결 당시 전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 목적 살인 혐의를 인정했다. 당시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으로 군권을 잡은 뒤 계엄군을 동원해 광주시민을 학살한 사실이 검찰 수사와 재판을 통해 드러난 것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3일 출간한 『전두환회고록』. [중앙포토]

전두환 전 대통령이 지난 3일 출간한『전두환회고록』. [중앙포토]

전 전 대통령이 책에서 ‘양민에 대한 군의 의도적이고 무차별적인 살상 행위는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한 부분에도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80년 이후 진상조사 결과 5·18 당시 민간인 165명이 사망하고 82명이 행방불명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당시 신군부 측이 시위 진압을 위해 공수부대를 파견함으로써 민간인들의 살상 피해를 키웠다는 것 또한 각종 자료와 증언에 의해 역사적 사실로 기록돼 있다.

부인 이순자(78)씨가 지난달 24일 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란 책도 5월 광주 피해자들에게 생채기를 남겼다.

이씨는 책에서 “우리 내외도 사실 5·18 사태의 억울한 희생자”라고 주장했다. 5·18의 책임과 당시 발포 명령자가 전 전 대통령이라는 의혹도 단호하게 부인했다. 이는 전 전 대통령이 80년에 내린 광주 재진입 작전의 범위 내에 발포명령이 들어있었던 것으로 판단한 대법원의 판결에서 벗어난다.

이씨는 또 80년 당시 신군부의 강압에 의해 하야한 최규하 대통령의 퇴진에 대해서도 “최 전 대통령이 남편에게 후임이 돼줄 것을 권유했다”고 서술했다.

하지만 5월단체들은 “최 전 대통령이 1980년 8월 16일 하야한 것은 신군부의 강압에 따른 것임이 명백한 역사적 사실”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또 5·18에 대한 반성은커녕 책임을 회피하는 책을 출간한 데 대해 “5·18 가해자들이 5월 영령들에게 또 한번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줬다”고 비판했다.

이들 부부가 책에서 ‘5·18민주화운동’을 ‘광주사태’라고 수차례 표현한 것도 5월 단체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참회록을 써야 할 사람들이 무책임한 변명록을 써 놓았다”는 지적이다.

5월 단체들은 전 전 대통령 부부가 잇따라 책을 출판한 시기와 배경을 놓고도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파면·구속으로 우익세력이 결집하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시점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회고록은 내란 살인 범죄자의 거짓망발”이라며 “5·18 당시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하고 이제 범죄 회피까지 하는 후안무치한 행위로 5·18 영령들을 또 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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