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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안풍’키우는 건 8할이 패권·구태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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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어제 당의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안 후보는 압도적 경선 승리와 최근 지지율 상승에 고무된 듯 “안철수의 시대가 오니, 문재인의 시대가 가고 있다”고 기염을 토했다. 그의 주장대로 대선 판도가 문과 안 양강 구도로 재편됐다기엔 이른 감이 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지지율 격차가 빠르게 좁혀지고 있는 건 사실이다. 게다가 물밑에선 중도·보수 단일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어 한 달 남짓 앞으로 다가온 대선에선 사실상 1대1 구도가 현실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안철수 경선 압승, 5당 후보 마무리 #보수표 잡으면 양강구도 나올 수도 #문 대항마 넘어 미래 리더십 보여야

사실 안 후보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존재감이 크지 않았다. 촛불집회에 나가지 않아 선명성이 강한 야권 정치인들에게 밀린 데다 반짝 등장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등에 가려 지지율은 한 자릿수까지 떨어졌다. 그런 안 후보가 다시 떠오르는 조짐을 보이는 건 일차적으로 민주당 경선전에서 탈락한 안희정 충남지사의 표가 그에게 향했기 때문이다.

안 지사가 잡고 있던 보수표가 안철수 후보에게 관심을 보였다는 건 일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에 대한 경계심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문 후보의 불투명한 안보관과 주변 인물들의 패권적 언동이 보수층에 불안감을 일으킨 것이다. 게다가 문 후보는 상대편 문제 제기에 정면 대응이 아닌 ‘종북몰이’라거나 ‘마, 고마해’라며 외면하고 있다. 그가 이런 이미지에 얽매인 채 동문서답식 자세를 고집할 경우 아마 안풍은 더 거세질 게 틀림없다.

안철수 후보의 급부상은 홍준표·유승민 두 보수 후보에겐 커다란 위기이자 대변신의 압력이다. 두 후보가 자기 희생과 당 개혁을 통해 보수 세력의 마음을 다시 잡지 못할 경우 판도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은 아예 표로 사실상 1대1 구도를 만들어 낼지도 모른다. ‘우파 재건’을 내건 홍 후보나 ‘새로운 보수’를 내세운 유 후보가 실제로는 “응석 부리지 말라”는 수준의 유치한 비방전을 벌이고 있고, 이에 따른 실망감이 진보에 완전히 기울어진 운동장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대선 대진표는 일단 완성됐다. 설사 문재인 대 안철수의 양강 대결 구도가 펼쳐진다 해도 안 후보가 가야 할 길은 멀다. 그가 지지율 2위 주자로 뛰어오른 데는 보수적 안보관 외에 4차 산업혁명, 교육 개혁 등의 이슈를 선점한 이유가 있다. 하지만 잇단 보수 후보 낙마로 ‘문재인 대항마’가 마땅치 않은 측면도 크다. 안 후보가 지지율 상승을 이어가려면 대항마 수준을 넘어 ‘대안 후보’로서의 자리를 굳혀야 한다. 또한 집권 이후 39석의 국민의당이 어떻게 협치를 통해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지 설계도를 내놓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 안풍도 신기루처럼 무너질지 모른다.

안보위기·경제위기가 동시 다발적으로 닥쳐 신음하는 대한민국이다. 그럼에도 나라는 극단적 대립과 대치로 갈렸다. 혼란과 분열을 수습하고 새로운 대한민국을 건설하기 위한 분명한 비전과 실천 방안을 제시하는 게 급선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