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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투기자본의 경영교란 방치해선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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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그러나 이번 칼 아이칸의 경영참여 움직임에 지나치게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이미 글로벌 수준의 자본시장 개방을 지향하고 있는 한국 경제에 대한 세계시장의 평가에 흠집을 낼 수도 있다는 점에서 냉정하고 의연하게 대처하는 자세가 긴요하다. 이번 사태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국민경제 발전에 부합하는 안정적 경영을 도모할 수 있도록 지배구조의 불확실성을 완화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노력이 기업과 정부 부문에서 깊이 있게 전개돼야 할 것이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소위 알짜배기 주요 국민기업의 외국인 주주 비율이 높아진 데는 1998년 외환위기 시 정부의 외자유치를 위한 적극적인 자본시장 개방정책과 이에 맞물린 공기업 민영화 정책의 급속한 추진에 원인의 상당 부분을 찾을 수 있다. 안타깝게도 공기업 주식 매각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는 과정에서 경제력 집중 문제는 심각한 변수로 고려하면서도 민영화 이후의 기업 지배구조나 안정적 지배주주 형성 등을 심각하게 검토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주식 지분은 골고루 분산됐지만 이들 기업이 국내 시장을 독과점하는 구조는 그대로 이어졌다. 안정성과 수익성이 뛰어나면서도 지배구조에는 취약한 이들 기업이 외국계 기업 사냥꾼의 표적이 될 공산은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지금에 와서 지배 대주주가 없는 민영화를 무리하게 추진했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가 야기된 것이라는 문제의식은 소모적 논쟁일 뿐이다. 역설적으로 민영화된 대표적 기업인 KT&G를 포함한 주요 기업들이 헤지펀드의 공격 대상이 된 것 자체가 민영화 이후 성공적인 경영활동을 통해 기업가치가 크게 성장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폐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헤지펀드들이 강조하는 주주 중시 경영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특정 지배 대주주의 도덕적 해이를 막는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거론돼 왔다. 그러나 다수의 해외 투기자본은 '주주 중시 경영'이라는 미명하에 단기적인 주가 급등을 통한 차익 실현, 고수익 자산의 매각, 고배당 등을 통한 치고 빠지는 방식으로 전체 주주의 이익보다는 자신들만의 이익을 확보하는 전략을 빈번히 사용해 왔다. 정부가 건전하지 못한 자본의 단기적 형태에 대한 대처가 미흡했던 결과 대표적인 초우량 기업들이 경영권 방어에 막대한 자원 낭비를 하는 양상이 방치돼 왔다.

따라서 주주 중시 경영 명분하에 자행되고 있는 단기 투기자본의 불건전한 경영 간섭에 대한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개별주주 이익과 보편적 국가 이익이 충돌할 여지가 있는 국가 기간산업 부문일수록 제도적 장치 도입이 시급하다. 개별주주의 이익 추구로 인해 보편적 국가 이익이 배제되는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예측 가능한 긴급개입장치의 활용방안도 모색돼야 한다. 미국.유럽.일본 등에서 '포이즌 필' '황금주' '차등의결권 제도' 등 단기 투기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을 방지하기 위한 경영권 방어장치 등을 마련하고 있음은 우리에게 좋은 교훈이 되고 있다.

이번의 KT&G 사태가 '대주주 중심의 지배구조가 유일한 해법'이라는 일부의 과거 회귀논리의 명분으로 활용돼서는 안 된다. 역사의 시계추를 되돌릴 수는 없다. 오히려 이를 계기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된 '책임전문경영체제'가 지속적으로 뿌리내리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시점이다.

오연천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