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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운동권 여대생 FTA 협상 주역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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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1980년대 운동권 여대생 출신이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 나선다. 이달 중순 외교통상부 FTA 심의관(국장급)으로 자리를 옮기는 남영숙(45.사진) 정보통신부 과장이 주인공.

미 스탠퍼드대 에서 공부(국제개발학 박사)한 그는 국제노동기구(ILO) 등에서 일하다 지난해 초 정통부 개방직 국가 공무원으로 변신했다.

이번에 FTA협상팀에 합류해 또다른 변신을 꾀한다. 80년대 반미반제국주의를 외치던 386 세대가 국익을 위한 시장개방 협상에 앞장서게 됐다.

그는 "학생운동했던 사람이 FTA 협상에 나서는 게 어색하다는 이들도 있지만 국익에 보탬이 된다는 점에선 마찬가지 아니냐"고 반문했다.

남 과장은 서슬 시퍼런 80년대 초반 5공화국 시절 고려대(경제학과) 재학 중 학생운동에 뛰어들어 고난의 세월을 보낸 기억이 있다.

부친은 당시 여당(민정당) 국회의원 남재희씨로 후에 노동부 장관을 지내는 등 대비되는 부녀의 삶이 관심을 모은 적도 있다. 시아버지는 재야 핵심 운동가인 예춘호(전 한국사회과학연구소 공동이사장)씨. 남편 예종영(46.고려대 정외과 교수)씨는 대학 선배이자 학생운동의 동지였다.

지난 설날 연휴 때 부친과 시아버지 모두에게 "공무원으로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니 흐뭇하다"는 덕담까지 들었다. 그는 평생 대학 시간강사로 일하면서 딸 넷을 키운 어머니를 인생의 모델로 삼고 있다.

남 과장은 "20년 가까이 국제기구에서 일하면서 우리나라 경제의 발전상을 다른 나라와 비교해볼 기회가 많았다"며 "FTA 협상을 통해 우리 경제가 한단계 더 도약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결혼과 함께 미 유학을 떠난 이후 2004년까지 스위스 제네바 국제노동기구(ILO)와 파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로 해외에서 세계 노동단체와 후진국 성장모델을 연구했다.

우리나라 FTA 협상의 최대 이슈인'농산물 개방'과'스크린쿼터 완화조치'등에 대해 "농민단체와 영화인 단체 등에서 반발하는 건 당연하다"며 "국가 경제의 큰틀에서 불합리하다고 해서 이들을 집단 이기주의로 폄하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피해 계층을 어떻게 설득하고, 어떻게 도울 지가 대외적인 협상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1년간의 정보기술(IT) 정책 경험도 소중한 자산이다. "해외에 나가 DMB 같은 우리 첨단 IT 기술을 선보이자 선진국들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였어요.수출 주도 경제가 된 만큼 FTA 협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다고 봐요."

이원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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