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랑은 가장 좋은 치료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25호 29면

공감 共感

함께 나와 강연회에 초대된 주치의 애바(오른쪽).

함께 나와 강연회에 초대된 주치의 애바(오른쪽).

 최근 산문집 『인연·음연(因緣·音緣)』 출간에 맞춰 이어지는 일련의 프로모션 활동 때문에 정신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저자 사인회 외에 특별한 행사도 있었다. 바로 나와 주치의 애바 쾅을 함께 초대해 강연을 여는 자리였다. 각각 의사와 환자의 입장에서 항암치료 이후 심리변화 과정을 함께 나누는 강연회를 마련한 것이다.

애바(쾅아이휘·靄慧)는 사실 우리 언니의 큰딸이다. 홍콩대 유방외과 주임이자 부교수로 대학병원 부원장을 맡고 있다. 그 바쁜 일정에도 나와 함께하기 위해 홍콩에서 오전 8시 30분 비행기를 타고 쿠알라룸푸르로 날아왔다. 24시간 안에 다시 돌아가야 하는 짧고도 빡빡한 일정이었다.

강연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였다. 지난 10년 동안 그녀가 공부한 유전자 연구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 발표와, 이제 막 암을 물리치고 새롭게 태어난 내가 일반인의 눈높이에 맞춰 그들이 궁금해하는 내용에 대해 답하고 암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는 것이다.

그날 프로그램 진행에 앞서 우리는 헤어 스타일링과 메이크업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비록 항암치료 이후 새로 난 머리카락이 많진 않았지만 말이다. 신기하게도 우리 둘 다 한국 SPA 브랜드인 미쏘의 옷을 입고 강연장에 나타났다. 만약 다른 파티장에서 나와 같은 옷을 입은 사람을 발견한다면 매우 당혹스러웠겠지만, 우리 같은 친밀한 사이에서 이런 우연이 생기니 기분이 또 달랐다. 한 명은 블랙, 한 명은 화이트로 맞춰 입은 듯 무대 위에서 서로를 더욱 빛나게 했다.

특히 마지막에 내가 용기를 내서 가발을 벗고 짧은 은발을 드러내자 100여 명의 관중과 취재진 사이에서 열렬한 함성이 쏟아졌다. 애바의 훌륭한 치료에 감사하는 마음에 ‘유 레이즈 미 업(You Raise Me Up)’까지 한 소절 부르고 나니 분위기는 한층 더 따뜻해졌다.

나는 이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여의사를 위해 한 편의 글을 쓴 적이 있다. 스페인 할머니를 둔 애바는 4분의 1 혼혈로 상당한 미모를 자랑한다. 그녀가 『사랑은 가장 좋은 치료법(愛是最好的療癒)』을 출간했을 때 내가 쓴 서문 중 일부분을 옮겨볼까 한다.

'어릴 적 나는 몸이 약해 병치레가 잦았다. 어머니는 당시 우리 집 경제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내가 아플 때마다 병원에 데려가곤 했다. 그중에서도 영어로 잔뜩 설명이 적혀 있던 '특효약'에 대한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목에 염증이 생기고 고열이 날 때마다 의사가 그 약을 꺼내 목구멍에 한 방울씩 떨어뜨리고 나면 신기하게도 병이 나았기 때문이다. 맛이 좋지 않아 삼키는 건 고역이었지만 그때부터 내겐 의사에 대한 믿음이 생겼던 것 같다. 이렇게 훌륭한 의사 선생님이 우리 집에도 한 명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애바. 나의 조카는 어릴 적부터 여러 모로 빼어난 영재였다. 관상학적으로 봐도 그랬다. 봉긋하게 솟아오른 이마는 총명함을 상징했고, 그녀는 독서를 통해 타고난 총기를 훌륭하게 키워나갔다. 의료계 정상에 올라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본래는 '권위'라는 단어를 사용해 그간의 연구공적을 치하하려 했으나 그것은 친인척 관계인 나보다 다른 분들이 더 잘 해주시리라 믿는다.

예술에 대해 논하자면 그녀는 일찍부터 나와 많은 얘기를 나눴다. 한때 무대연출에 심취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옆에서 지켜보니 언니 부부는 딸에 대한 기대가 너무 커서 차마 이쪽 재능을 응원하지는 못하는 듯 했다. 아마 우리는 이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의 연구결과에 힘입어 나은 환자로서, 더 많은 환자들이 그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그 이기심은 옳았다고 말할 수 있다.'

애바에 관해 말할 때 빠질 수 없는 게 또 하나 있다. 그녀의 남편 리웨이다(李維達) 선생은 홍콩양화병원 원장이다. 그의 부친 리수페이(李樹培) 선생은 이 병원의 전임 원장으로 그 역시 부친께서 103세에 영면하고 나서 원장직을 이어받았다. 내가 어르신을  뵈었을 때 이미 100세에 가까웠는데도 매일 정시에 병원에 가서 환자들을 돌본다고 말씀하셨다. 이 얼마나 믿기 힘들면서도 탄복할 만한 일인가.

이곳은 각계각층의 저명한 인사들이 즐겨 찾는 병원으로도 유명하다. 지난 1월 광고 촬영 도중 당한 낙마 사고로 허리를 다친 류더화(劉德華)도 어김없이 이 병원을 찾았다. 나는 애바에게 내 책을 전해달라고 부탁했다. 역시 독서애호가인 그의 요양기간 동안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이제는 퇴원해 재활치료에 들어간 그 역시 하루 빨리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천추샤(陳秋霞·진추하)
라이언팍슨 파운데이션 주석

onesummernight76@gmail.com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