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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은 사라지고, 비주얼만 남았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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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5호 30면

감독: 루퍼트 샌더스배우: 스칼렛 요한슨, 줄리엣 비노쉬, 마이클 피트등급: 15세 관람가

감독: 루퍼트 샌더스배우: 스칼렛 요한슨,줄리엣 비노쉬,마이클 피트등급: 15세 관람가

‘걸작’이라 평가받았던 원작의 매력을 살리면서 리메이크판의 존재 이유를 보여줄 것. 지난 달 29일 개봉한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은 원작에 기반한 작품이 직면한 이런 숙명 안에서 갈팡질팡한다.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팬이란 걸 전제로 말한다면, 다소 실망스럽다. 복잡해서 더 매혹적이던 원작의 문제의식과 마음을 뒤흔들던 음울한 분위기는 완전한 재현도, 재해석도 아닌 상태로 어정쩡하게 남았다. 총천연색 실사로 되살아난 미래 도시의 정경 정도만 볼 만하다.

영화 ‘공각기동대: 고스트 인 더 쉘’

영화는 70%의 사람이 기계 의체를 달고, 뇌는 네트워크와 연결(전뇌화)돼 있는 미래 도시를 배경으로 한다. 주인공 메이저(스칼렛 요한슨)는 뇌를 제외하고 전신이 의체인 인물로, 섹션9에서 특수업무를 하고 있다. 그의 임무는 인간의 정신을 해킹ㆍ조종해 테러를 저지르려는 범죄조직을 잡는 것. 메이저는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자신의 뇌와 몸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고, 조작된 과거와 직면한다.

원작의 팬인 당신이라면

오시이 마모루 감독의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1995)는 말 그대로 ‘전설적인’ 작품이었다. 애니메이션 역시 원작이 있는데, 1989년부터 ‘영 매거진’에 연재된 시로 마사무네의 동명 만화다. 애니메이션이 제작된 시기가 1990년대 초반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인터넷이 막 생활을 파고들기 시작할 무렵, 컴퓨터가 미래의 인류에 미칠 영향에 대한 이 작품의 통찰은 신선하고 충격적이었다. 이후 같은 소재가 ‘매트릭스’ ‘아바타’ 등의 영화에서 수차례 되풀이된다.

하지만 22년 후 실사판이 만들어진 지금, 네트워크ㆍ인공지능(AI) 등은 이미 생활 속으로 들어왔고 이에 기반한 인간 실존에 대한 고민 역시 낡은 질문으로 느껴진다. 제작진에겐 이것이 큰 고민이었음에 틀림없다. 루퍼트 샌더스 감독은 “원작의 은유적이고 추상적인 질문을 사람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단순화했다”고 말한다. 따라서 원작의 구사나기 소령(영화의 메이저 역할)의 ‘인간은 무엇으로 규정되는가’라는 고민은 ‘내가 가진 기억은 진짜인가 아닌가’ 쪽으로 바뀌었고, 모호하던 선악 구도는 명확해졌다.

원작의 팬이라면, 작품의 메시지에 집중하기보다 그토록 감탄하며 봤던 원작 애니메이션의 명장면들이 어떻게 생생한 실사로 구현되었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게 좋겠다. 잠입수사를 위해 메이저가 고층 빌딩을 누운 자세로 낙하하는 장면이라던지, 차를 뜯어내려 힘을 주는 메이저의 피부가 찢겨나가며 기계 의체가 드러나는 모습, 다른 사람의 ‘고스트(영혼)’ 속으로 다이브하는 장면 등이다. 신기한 것은 애니메이션 속 구사나기 대령보다 실사의 메이저가 더 인조 인간처럼 느껴진다는 점. 인간과 거의 흡사한 로봇에게 느끼는 불편한 감정을 뜻하는 ‘언캐니 밸리’(uncanny valley)를 시각적으로 구현하고자 했다는 게 제작진의 설명이다.

아직 원작을 보기 전이라면  

원작에 대한 이미지 없이 본다면, 할리우드 오락물로서 보통 정도의 재미는 찾을 수 있겠다. 이미 여러 작품에서 다뤄진 설정이라 아주 신선하지 않지만, 인간의 뇌에 있는 정보가 컴퓨터로 백업되고 이를 조작해 범죄에 이용한다는 스토리는 여전히 흥미롭다.

좀 더 완벽해지기 위해 신체의 일부를 기계로 교체하거나, 스마트폰과 같은 장치를 거치지 않고 네트워크를 통해 뇌끼리 대화하는 장면 등은 머지 않아 다가올 현실을 보여주는 듯 하다.

홍콩과 도쿄와 뉴욕을 섞어놓은 듯한 미래 메트로폴리스의 풍경 역시 감탄을 자아낸다. 수많은 홀로그램과 조명으로 화려하게 빛나는 도시는 “과거와 미래, 동서양의 모든 경계가 무너진 혼재된 문화”(샌더스 감독)를 다이내믹하게 보여준다. 메이저 역할의 스칼렛 요한슨을 비롯해 닥터 오우레를 연기한 줄리엣 비노쉬, 섹션9의 총 지휘관인 아라마키 역의 기타노 다케시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배우들의 ‘합’을 관람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원작을 건너뛰고 실사판을 봤다면 중간중간 이해하기 힘든 설정이나 지나친 비장함 등이 거슬릴 수도 있다. 궁금증이 가시기 전 원작 애니메이션을 찾아보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울음 같기도, 주문 같기도 한 주제곡 ‘메이킹 오브 사이보그(Making of Cyborg)’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초반 3분 정도의 도시 풍경 시퀀스만 보더라도, 왜 그토록 많은 감독들이 이 애니메이션을 리메이크하고 싶어했는지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파라마운트 픽쳐스·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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