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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채권단 수 싸움 … 더 꼬인 금호타이어 매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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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금호타이어 매각을 둘러싼 채권단과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간 수 싸움이 치열하다. 박 회장이 던진 ‘컨소시엄 불허 시 소송’ 카드에 채권단은 고민 끝에 ‘컨소시엄 구성안 제출 시 재논의’ 카드로 맞섰다. 공은 다시 박 회장에게 넘어갔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28일 “주주협의회는 박삼구 회장의 컨소시엄 허용 요구안을 부결 처리하고 박 회장이 컨소시엄 구성안을 제출하면 허용 여부를 재논의하기로 결의했다”고 밝혔다. 박 회장이 금호타이어를 인수하기 위한 자금 9550억원을 어떻게 조달할지 구체적인 계획을 내면 그걸 보고 다시 논의한다는 결론이다. 박 회장의 컨소시엄 구성에 대해 허용도 불허도 아닌 보류 입장이다.


채권단의 이번 결정은 법적 분쟁을 피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다. 채권단은 지난 13일 중국 타이어업체 더블스타와 금호타이어 주식 42.01%를 9550억원에 파는 주식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우선매수권을 가진 박 회장은 단 1원이라도 더 내면 금호타이어를 가져갈 수 있다. 산은은 우선매수권이 박 회장 개인에게 있기 때문에 컨소시엄을 꾸려 인수하는 건 인정하지 않는다고 밝혀왔다. 이에 박 회장 측은 “주주협의회에 정식으로 안건을 부의해 달라는 요청을 무시했다”며 절차를 문제 삼아 소송에 나서겠다고 압박했다. 지난 19일엔 대선주자들까지 일제히 나섰다.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채권단은 국익과 일자리를 고려해 신중하게 매각을 판단해야 한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쌍용차 사례처럼 먹튀가 돼선 안 된다”고 밝혔다. 광주광역시와 곡성에 공장을 둔 ‘호남기업’ 금호타이어 매각이 대선을 앞두고 호남권 정치 이슈로 부각된 것이다.


산은은 이미 더블스타에 ‘우선매수권은 박삼구 회장 개인에게 한정된 권리’라는 점을 확인시켜줬다. 이를 섣불리 뒤집으면 더블스타가 법적 대응에 나설 빌미를 주게 된다.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에 따라 더블스타가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제기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회장 요구를 들어줄 수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에서 채권단은 ‘추후 재논의’를 결정했다.


박 회장 측은 “채권단 결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금호아시아나는 28일 입장자료를 내고 “산업은행의 이율배반적인 결정을 이해할 수 없으며 검토의 가치도 없다”고 밝혔다. 이러한 반발은 채권단의 허용 여부가 확실치 않은 상황에서는 컨소시엄에 참여할 전략적투자자(SI) 모집이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이다. 금호타이어 관계자는 “채권단의 결정은 불허나 다름없다.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박 회장의 우선매수권 행사 기한이 언제까지인지도 논란거리다. 이 기한을 산은은 4월 13일(계약 조건 통보 뒤 30일)로 보지만 박 회장 측은 더블스타와 맺은 별도의 확약서까지 받은 뒤에 기한을 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익명을 원한 산은 관계자는 “주식매매계약서(SPA) 송부 기준 30일인 4월 19일로 기한을 늦추는 건 검토할 수 있다”고 밝혔다.


금호타이어 매각을 두고는 전문가들도 신중론과 원칙론이 엇갈린다. 해외 매각에 부정적인 쪽에선 중국 상하이차에 2004년 매각됐던 쌍용차 사례를 근거로 든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금호타이어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미래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도 중요하다”며 “중국 업체로 넘어가면 기술 유출은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 뒤 국내 고용이 유지될 것이냐에 대한 불안감도 있다. 더블스타는 지난 21일 보도자료를 통해 “인수를 마무리한 뒤 금호타이어 임직원 고용을 승계하고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금호타이어 노조는 “더블스타의 고용 보장 약속을 못 믿겠다”며 28일 산업은행과의 면담에서 매각절차 중단을 요구했다. 노조의 이재일 기획실장은 “누가 인수하든 고용 보장이 중요하다”며 “워크아웃 장본인인 박 회장을 지지하진 않지만 해외자본인 더블스타는 검증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반면 박 회장이 인수하는 게 기업가치에 긍정적인지 회의적인 시각도 나온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국내 공장에 어디가 투자를 많이 하느냐가 관건인데 박 회장이 자금 여력이 별로 없다는 면에서 현실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쌍용차가 인도 마힌드라그룹에 인수된 뒤 살아났듯이 좋은 주인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해외 매각에 반대하는 논리가 약하다는 지적도 있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중국의 ‘사드 보복’으로 여론이 좋지 않지만 중국 기업이라서 마땅찮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며 “채권단은 시장 원칙대로 매각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 측 컨소시엄 구성안 #제출되면 추후 재논의 결론 #금호 측 “사실상 불허” 반발

한애란·김기환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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