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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베이징영화제의 한국 영화 금지는 소탐대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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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중국 당국이 다음달 16~23일 열리는 제7회 베이징 국제영화제에서 한국 영화를 초청해놓고도 상영하지 않기로 한 것은 심히 무례한 일이다. 지난해의 경우 이민호·김우빈 등 한류 스타가 대거 참석하는 등 양국 영화인이 활발하게 교류했지만 올해는 최근 발표된 1차 상영작 명단에서 한국 영화를 완전히 배제했다니 참으로 유감스럽다. 이런 갑작스럽고 몰상식적인 조치는 누가 봐도 한국 내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 당국의 감정적인 보복이라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사실 중국이 사드를 이유로 관광에 이어 영화 분야에서도 한국에 빗장을 걸려는 징후는 이미 여러 곳에서 발견돼 왔다. 지난해 중국에서 개봉한 한국 영화가 단 한 편도 없다는 영화진흥위원회 통계부터가 이를 잘 말해 준다.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부산행’은 지난해 배급 판권이 중국에 팔렸음에도 여태 개봉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한국 배우 하정우와 중국 배우 장쯔이가 출연할 예정이던 중국 영화 ‘가면’을 비롯한 한·중 합작작품들의 제작 논의도 완전히 얼어붙은 상태다.

특히 유감스러운 일은 자유와 창조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는 영화 분야에서 이 같은 압박이 벌어졌다는 사실이다. 문화교류를 막아 군사적 목적을 달성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황당하기 이를 데 없다. 그간 한·중 교류에서 영화는 양국 간 문화소통의 대표 역할을 해 왔다. 중국 당국의 무리한 문화 보복은 그동안 쌓아 온 귀중한 민간교류 자산을 한꺼번에 잃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결과만 낳을 뿐이다.

한·중 간 군사 갈등을 대화로 푸는 대신 경제보복이나 문화 빗장 걸기 같은 어깃장 대응으로 해결하려고 한다면 한국에서 중국 당국에 실망하는 목소리만 높아질 뿐이다. 이런 식의 감정적인 조치는 한국인의 가슴에 분노만 일으킬 뿐 사태 해결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간 애써 쌓아올린 양국 국민 간의 신뢰와 중국의 국가 이미지만 깎아내릴 뿐이다. 중국 당국은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반문화적인 발상부터 멈춰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