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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은 헌법을 만드는 힘의 원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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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근거다.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이다. 재판부는 국민들로부터 부여받은 권한에 따라 이뤄지는 오늘의 선고가….”

이정미 권한대행의 말이다. 민주공화국에서 최고 권력의 주체는 국민이고 모든 힘의 원천도 국민이다. 익히 알고 있는 헌법 제1조의 내용이다. 고귀한 권리지만 옷장 속의 보석처럼 일이 있을 때나 꺼내 보고 다시 집어넣는 추상적 권리이기도 했다. 그러나 헌법과 법률을 무시한 대통령을 평화적 절차에 따라 국민의 힘으로 퇴거시킴으로써 국민들은 법치주의와 헌정주의가 아직은 작동하고 있다는 점에 안도했다. 탄핵에 찬성한 80%의 국민은 인간 박근혜나 여자 박근혜를 몰아낸 것이 아니라 대통령 박근혜가 파괴한 헌정 질서를 탄핵으로 복원하려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국민들은 자신 안에 국가 주체로서의 힘이 실제로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 3월 10일, 광장의 촛불은 “이게 나라다”라고 쓴 손팻말로 한 줄 논평을 대신했다.

한편 친박 진영은 촛불 국민을 종북 빨갱이라 불렀고 계엄을 주장하거나 과거의 국민교육헌장을 낭독하는 등 독재정권의 유산을 소환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특검과 헌법재판관들을 조롱하고 위협했으며 기자들을 폭행했다는 점이다. 이번 탄핵 재판 중 벌어진 일들은 헌법 수호 대 헌법 부정 , 공화주의 대 배타주의, 민주주의 대 국가주의, 평화주의 대 폭력주의의 여러 대립 양상이 중첩됐다. 자신의 힘을 자각한 국민들의 정치효능감은 대한민국이 시대에 역행하지 않고 정상적인 법치국가로 자리 잡는지 늘 감시하고 참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