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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체 드러낸 200억 비자금] 재구성한 전달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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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현금을 꽉 채운 상자들을 차에 싣고 접선 장소로 운반→김영완씨가 자기 집 반지하 방으로 운반→권노갑씨에게 전달'. 검찰이 13일 밝힌 현대 측의 비자금 전달 과정은 이렇게 치밀한 각본에 따른 007식이었다.

다음은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의 구속영장을 통해 재구성한 2000년 당시 상황이다.

權씨와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전직 무기거래상 김영완씨, 그리고 이익치 전 현대증권 회장은 2000년 총선을 앞두고 특급호텔인 서울 S호텔에서 만났다. 이들 네 사람은 이미 1998년부터 6~7차례 회동을 해온 사이였다. S호텔은 權씨가 중요한 사람을 만날 때 자주 이용하는 곳이다.

權씨와 金씨는 91년부터 알고 지냈으며 權씨는 99년 초부터 2000년 여름까지 金씨 부하 직원의 이모 명의로 된 빌라에서 살았을 정도로 가까웠다. 검찰은 명의는 다른 사람이었지만 실제 소유자는 김영완씨 본인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鄭회장과 李전회장이 현대그룹 최대 실세였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자리에서 權씨는 鄭회장에게 "자금을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다. 적자가 누적되는 대북사업에서 돌파구를 찾고자 했던 鄭회장도 "금강산 카지노 허가를 지원해 주고 향후 현대에 어려움이 닥칠 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큰 틀'의 합의가 끝나자 權씨는 자리를 떴고, 남은 사람들은 구체적인 지원 액수와 전달 방법 등을 상의했다.

회의를 통해 전달 방식이 합의됐다. 鄭회장은 權씨에게 줄 비자금 2백억원을 모두 현찰로 인출했다. 그리고 이 돈을 權씨에게 전해 줄 김영완씨에게 '제3의 장소'에서 만나 건네주기로 했다. 약속한 장소는 서울 강남의 현대.한양아파트 인근 주차장과 청담중학교 앞 이면도로 등 세곳이었다.

2백억원은 1만원짜리 2백만장. 무게만 해도 2t이다.

현대 측은 50여개의 상자에 현찰을 나눠 담아 약속된 장소로 운반했다. 승용차.승합차 등을 동원해 모두 네차례에 걸쳐 날랐다.

鄭회장 측이 이런 방식으로 金씨에게 전달한 돈이 權씨 측으로 들어간 과정은 아직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검찰은 밝혔다.

그러나 "鄭회장이 金씨에게 돈을 준 뒤 權씨가 鄭회장에게 전화를 해 '잘 받았다'고 말했던 것으로 확인됐다"며 전달된 사실만큼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물론 검찰이 밝힌 이 같은 權씨의 현대 비자금 수수 과정에 대해 權씨 측은 "사실이 아니다"고 강력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權씨 측은 "鄭회장을 98년에 한번 정도 인사 차원에서 만났을 뿐"이라며 "현대 측이 준 돈은 金씨가 가져갔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대검 중수부 관계자는 "그런 (배달사고) 걱정은 할 필요가 없다"며 "우리는 아마추어가 아니다"며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였다.

강주안.임장혁 기자 <jooa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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