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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기자도 다 아는 슈틸리케 용병술

중앙일보

입력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 [일간스포츠]

울리 슈틸리케 축구대표팀 감독 [일간스포츠]

마르첼로 리피(69) 중국축구대표팀 감독은 한국전을 하루 앞둔 22일 공식 기자회견에서 "우리가 어떻게 준비했는지 지켜보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한국을 꺾을 비장의 카드를 준비했다는 자신감의 표현으로 들렸다.

한국 전술 철저 분석한 리피와 비교

23일 중국 창사 허룽스타디움에서 열린 경기에서 리피 감독은 인홍보(허베이 화샤싱푸)라는 신무기를 꺼내들었다. 1-0으로 중국이 앞선 후반에 교체투입된 인홍보는 측면 지역에 자리잡고 한국 풀백들의 오버래핑을 저지했다. 수비수들이 공격에 가담하는 횟수가 줄면서 공격수들이 고립됐고, 중국의 밀집수비 위력은 더욱 높아졌다. 공간 침투에 능한 손흥민(토트넘)의 빈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진 상황이기도 했다.

울리 슈틸리케(독일) 한국축구대표팀 감독은 이번에도 'A매치 공식'을 따랐다. '황태자' 이정협을 선발 공격수로 내세웠고 경기가 안 풀리자 장신공격수 김신욱(전북)을 투입해 높이를 활용하는 단조로운 축구로 전환했다. 후반 중반 이후엔 황희찬(잘츠부르크)을 투입해 중국 수비진을 흔드는 역할을 맡겼다. 구성도 순서도 슈틸리케 감독이 최근 월드컵 최종예선과 A매치 평가전을 치르며 여러 번 활용한 패턴이다.

리피도 슈틸리케 감독의 '선수 기용 공식'을 간파했다. 김신욱이 그라운드에 나서자 전반에 활용한 4-3-3 전형 대신 허리를 두껍게 하는 4-4-1-1을 가동해 변화를 줬다. 바로 이 시점에 인홍보를 투입해 김신욱으로 향하는 볼의 흐름을 사전에 차단했다. 김신욱의 주변을 두 명의 센터백이 에워싸 고공 플레이를 방해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마지막 반전을 노려야 할 후반 막판에 축구대표팀에 처음 이름을 올린 허용준(전남)을 내보낸 슈틸리케 감독의 결정도 패착이었다. A매치 경험이 없는 허용준은 열심히 뛰었지만 중국 수비진에 위협이 되지 못했다. 중국전 패배가 선수단에 미칠 악영향에 대해 슈틸리케 감독이 간과한 게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경기 후 중국 취재진은 "한국이 후반에 김신욱과 황희찬을 기용해 공격에 변화를 줄 것으로 미리 예상했다"고 자랑삼아 말했다. 한국축구대표팀의 단조로운 전술에 대해 리피도, 중국기자들도 알았다. 한국 취재진도 이미 여러 차례 비판한 부분이다.

하지만 정작 감독 자신은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했다. 공식기자회견에서 단조로운 전술에 대해 비판하는 한국 취재진에게 "그럼 내가 어떻게 해야하느냐"고 되묻는 슈틸리케 감독의 표정에서 죄책감이나 아쉬움은 읽을 수 없었다. 창사=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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