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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 녹슬고 구멍 뚫린 세월호…유족들 "볼 자신이 없네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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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직접 볼 자신이 없네요.”
세월호가 1073일 만에 모습을 드러낸 23일 오전 경기도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 유가족대기실. TV로 세월호를 지켜보던 김민지(당시 17세, 단원고 2학년)양의 아버지 김내근(48)씨는 이렇게 말했다. 김씨는 세월호 침몰 현장에 가지 않았다.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1073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는 유가족들.  안산=임명수 기자

경기도 안산 정부합동분향소에서 1073일만에 모습을 드러낸 세월호를 바라보고 있는 유가족들. 안산=임명수 기자

이유를 묻자 “배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 얼굴과 침몰 당시의 상황이 머릿속에 떠오를 것 같아 안산에 남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어젯밤 밤잠을 설쳤다고 했다. TV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고도 했다. 인양이 제대로 이뤄질지 초조한 마음이 들어서다.  
 그는 “어제는 정말 가슴을 졸였는데 저렇게 쉽게 인양할 것을 왜 그렇게 시간을 끌었는지 모르겠다”며 “안전한 장소로 옮겨져 미수습자들을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침통한 안산 합동분향소의 가족들 #TV 보며 "저렇게 빨리 인양하는데…" #3주기 행사 앞두고 봉사자들 분주

 유가족대기실에는 김씨를 비롯해 유가족이 7명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어머니들은 주로 ‘416공방‘에 앉아 대화를 나눴다. 아버지들은 TV 앞에 모여 앉았다.

소파 위 책상에는 노란색 리본과 스티커 등이 가득 놓여 있었다. 다음 달에 열릴 3주기 행사에 쓰일 것들이다. 10명 남짓의 안산지역 자원봉사단이 작업하고 있었다.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안산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시민들에게 나눠 줄 노란리본과 스티커를 담고 있다.    안산=임명수 기자

세월호 3주기를 앞두고 안산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시민들에게 나눠 줄 노란리본과 스티커를 담고 있다. 안산=임명수 기자

TV를 지켜보던 영석이(당시 17세, 단원고 2학년) 아버지 오병환(46)씨는 “아예 벌집으로 만들어 놓았구먼”이라고 했다. 오씨는 “참담하다. 중국업체가 당초 하려던 방식이 아니지 않으냐 괜한 구멍만 뚫어놓고 저게 뭐냐”며 “그렇게 시간을 끌더니 박근혜가 구속수사 되는 시점에 올린 거 보니 또 다른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된다”고 했다.
오씨는 “이제 시작”이라며 “미수습자도 찾고 진상규명도 제대로 됐으며 좋겠다”고 강조했다.
 신호성(당시 17세, 단원고 2학년)군 어머니 정부자(50)씨도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미수습자를 찾는 게 우선”이라면서도 “아이들의 억울함을 못 밝힐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3년 가까이 물속에 잠겨 녹슬고, 여러 개의 구멍이 뚫려 훼손된 배를 보고나니 진상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까 우려된다는 것이다.
 정씨는 “세월호특별조사도 반쪽짜리로 끝났는데 뭍으로 올라온 배를 보고도 제대로 된 진상조사가 이뤄지지 않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자꾸만 든다”며 “제발 저 큰배가 급격히 침몰한 원인을 찾아 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일반인 희생자 가족들도 전남 진도군 조도면 팽목항에 도착해 세월호가 인양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배에서 인양 장면을 보고 있다는 전태호 일반인 희생자 대책위원장은 “어제부터 인양 현장을 지키고 있다. 드디어 배가 올라왔다. (예전 생각이 나서) 착잡하고 먹먹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인양이 수월하게 진행되는 모습을 보니 좀 더 일찍 했으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쉽게 올라올 배가 인양하는 데 3년이나 걸렸다”며 “1년 전이라도 인양을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신중하게 작업을 해서 아직 찾지 못한 희생자들도 모두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합동분향소에서 10여 분 거리에 있는 안산교육지원교육청 별관에 마련된 기억교실은 조용했다. 방문객은 오전에 한 명 정도만 다녀갔다.

교실 입구에는 ‘이네야 와서 미안해 그곳에선 편히 쉬길’ ‘그곳에서는 별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기를’ 등의 추모글이 붙어 있었다. 또 각 교실에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라는 글이 적힌 노란 깃발이 꽂혀 있을 뿐이다.   

안산 기억교실을 찾은 한 시민이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했던 책상을 둘러보고 있다.   안산=하준호 기자

안산 기억교실을 찾은 한 시민이 당시 단원고 2학년 학생들이 사용했던 책상을 둘러보고 있다. 안산=하준호 기자

기억교실을 찾은 김진숙(51ㆍ여)는 “매년 이맘때쯤이면 아이들 생각에 분향소를 찾고 기억교실도 두 번째 방문”이라며 “미수습자 가족 마음을 깊이 알 수는 없지만 선체가 인양된 만큼 하루 빨리 찾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16안산시민연대는 이날 오후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만시지탄(晩時之歎)의 감은 있지만 세월호가 인양되는 것을 환영해 마지 않는다”며 “아홉분 미수습자의 수습을 일차적으로 수행하되 세월호 진실규명에 반대하는 일체의 행위를 하지 말아 줄 것을 촉구한다”고 밝혔다.

416안산시민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안산=임명수 기자

416안산시민연대가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안산=임명수 기자

이어 “해수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선체를 절단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는 세월호 침몰에 대한 진실 규명을 포기하겠다는 것”이라며 “세월호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세월호는 온전하게 복원 전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안산ㆍ인천=임명수ㆍ하준호ㆍ최모란 기자 lim.myoungs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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