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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살리기’ 첫 관문…50% 출자전환+3년 상환 유예, 채권자 동의 끌어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정부가 23일 대우조선해양 구조조정 방안을 발표했다. 핵심은 신규로 2조9000억원을 지원해 줄 테니 모든 이해관계자가 손실을 부담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시중은행 및 회사채 투자자들은 50~80% 출자전환을 하고 만기를 3년 연장해야 한다. 회사(대우조선해양) 측은 자구 계획을 신속하고 강도 높게 추진해야 한다. 노조는 구조조정에도 분규를 벌여서는 안 되며 임금을 반납하는 등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 이런 전제조건이 충족될 경우에 한해 정부는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통해 2조9000억원을 지원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정부, 대우조선 지원 전제로 손실분담 원칙 #국민연금 3500억…‘최순실 사태’로 동의 쉽지 않아 #개인들 “분식 관리 못한 산은 책임” 반발 #채무재조정 실패 땐 “즉각 P플랜 돌입” 압박 #“P플랜은 악수, 채권자들 결국 동의할 듯”

 ‘대우조선 살리기’ 첫발을 디뎠지만 당장 눈앞에 커다란 산이 보인다. 회사채 투자자들이 과연 자율적인 채무재조정에 동의할까 하는 점이다.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사진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의 LNG운반선 [사진 대우조선해양]

◇‘최순실 게이트’ 논란 국민연금, 동의 쉽지 않아

자율적인 채무재조정에 가장 반감을 가진 쪽은 회사채 투자자들, 곧 사채권자다. 가까이는 다음 달부터, 멀리는 2019년까지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 규모가 총 1조3500억원이다. 이들 사채권자가 회의(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채무재조정에 동의해 줘야 한다. 기업어음(CP) 약 2000억원은 사채권자들의 동의를 안 받아도 채무재조정이 가능하다.

 1조3500억원 가운데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가 들고 있는 물량은 약 7000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그 외 기관투자자가 3000억~3500억원, 개인들이 들고 있는 물량이 3000억원 정도로 보인다. 사채권자 집회에서 안건이 통과되려면 집회 참가자의 3분의 2, 전체 채권 발행액의 3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평시 같았으면 정부 ‘편’이랄 수 있는 국민연금과 우정사업본부가 들고 있는 물량이 전체 채권의 절반이 넘기 때문에 정부가 원하는 채무재조정을 끌어내기 쉬웠겠다.

 문제는 지금의 정국이다. ‘최순실 게이트’ 논란의 중심에 국민연금이 있다. 국민연금은 청와대의 압력을 받아 연금에 손실을 끼칠 수 있는 옛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찬성표를 던진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 노후’를 사익 추구에 썼다는 비판 휩싸여 있다. 이런 마당에 정부 편을 들어 투자자(국민)의 이익에 반할 수 있는 채무재조정에 쉽게 동의해 줬다가는 또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를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 관계자는 “대우조선해양 회사채는 당시 A등급 이상으로 정당한 절차에 따라 투자된 것”이라며 “일부에서는 연금이 왜 아직까지 회사채를 들고 있느냐고 비판하지만 개인들간의 소액 채권 거래만 이뤄지는 장내에서 3000억원이 넘는 물량을 파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채무재조정도 정부 입김이 아니라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방향에서 검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국민연금의 거취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개인 투자자들은 가장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인터넷 채권 투자 카페에는 채무재조정 안이 지난주 언론에 언급되자 “채무재조정에 반대해야 한다. 정부나 정당 게시판에 적극적으로 부당함을 알려야 한다”는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이들은 “당시엔 분명히 A등급 이상의 채권이었다”며 “회계법인이 분식회계를 눈감아 주고 그걸 제대로 관리 못한 산은의 책임을 왜 개인 투자자가 함께 나눠야 하느냐”고 주장한다.

 사채권자 집회는 채권별로 열린다. 채무재조정안의 통과를 위해선 총 5차례의 사채권자 집회에서 모두 동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특히 반발하는 쪽은 4월 21일 만기가 돌아오는 ‘대우조선해양6-1’ 채권 보유자들이다. 집회 개최 예정일은 4월 17~18일. 이들은 “며칠만 있으면 원금을 돌려받는 상황에서 갑자기 출자전환과 만기상환 유예라는 날벼락을 맞았다”고 강조한다.

◇벼랑 끝 전략, “채무재조정 안 되면 법적 강제”

 사채권자들의 반발에도 정부 입장은 강경하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사채권자 집회 등을 통한 이해관계자간 채무조정 합의가 불발되면 즉각 대우조선은 채권단과 협의 후 법원에 P플랜(프리패키지드 플랜)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P플랜은 정부가 기업 구조조정 속도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기업구조조정 모델이다. 워크아웃의 ‘신규자금 지원 기능’과 법정관리의 ‘채무 재조정 기능’을 합쳐 놓았다. 지난해 한진해운 사태 때 채권단으로부터 신규 자금지원을 못 받자 법정관리를 선택하면서 물류 파동, 대량 해고 등으로 이어졌던 사례가 제도 도입의 계기가 됐다. P플랜은 채권단의 신규자금 지원을 전제로 3개월 정도의 초단기 법정관리를 거치게 되며, 법원 주도의 일괄적이고 신속한 채무조정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문제는 P플랜 역시 어쨌든 법정관리의 일종이라는 점이다. 이미 수주된 선박의 발주 취소 사유에 해당한다. 발주가 취소되면 이미 건조 중인 선박이 사장되고 금융회사에 선수환급보증금(RG)을 돌려달라는 요청(RG 콜)이 발생할 수 있다. 수출입은행 7조1000억원 등 은행권의 RG콜 규모는 11조1000억원에 이른다.

 P플랜에 들어가도 실제 RG콜은 많지 않을 것이란 주장도 있다. 실제로 STX조선해양은 지난해 5월 법정관리에 들어갔으나 RG콜은 거의 없었다. 저가수주가 많아 발주처 입장에선 선수금을 돌려 받느니 완성된 배를 받는 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 주장도 있다. 한 조선 관련 학과 교수는 “소비자들 중에 내일 부도가 날지도 모르는 차를 받아가려는 사람이 있겠느냐”며 “RG콜이 많지 않을 것이란 주장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벼랑 끝’ 전술로 사채권자를 압박하고 있다. 자율적으로 손실 부담을 하지 않는다면 강제로라도 시키고, 그 결과는 오히려 더 나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임정민 NH투자증권 FICC리서치센터 연구위원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채무재조정 쪽이 원금 회수율이 더 높을 것”이라며 “과정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결국 채무재조정에 동의하지 않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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