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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새끼를 낳은 미꾸라지...물고기도 접붙여 번식시킨다

중앙일보

입력

멸종위기 I급 민물고기인 미호종개 [순천향대 방인철 교수]

멸종위기 I급 민물고기인 미호종개 [순천향대 방인철 교수]

물고기도 과일나무처럼 접붙여 번식시킨다.
토종 다래에 키위를, 머루에 포도를 접붙이면 성장도 빠르고 맛있는 과일도 열린다.
이처럼 물고기도 과일나무처럼 접붙이는 기술이 국내에서 선을 보였다. 그것도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야생동물 Ι 급 민물고기인 미호종개를 대량 번식시키는 기술이다.

미호종개 정소와 난소를 미꾸라지에 이식하는 장면 [국립생물자원관]

미호종개 정소와 난소를 미꾸라지에 이식하는 장면 [국립생물자원관]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은 22일 미호종개의 생식 줄기세포를 미꾸라지에 이식해 인공 증식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생물자원관 유용자원분석과 연구팀은 먼저 미호종개의 사촌인 미꾸라지를 불임화한 다음, 여기에 미호종개의 난소와 정소를 이식했다. 암컷의 난소는 알을, 수컷의 정소는 정자를 생산하는 생식기관(생식 줄기세포)이다.

미호종개의 난소가 이식된 대리모 미꾸라지 [국립생물자원관]

미호종개의 난소가 이식된 대리모 미꾸라지 [국립생물자원관]

난소와 정소를 이식받은 미꾸라지는 미호종개의 알과 정자를 생산했다.
연구팀은 이 알과 정자를 지난해 10월 수정시켰고, 여기서 7576마리의 어린 미호종개가 태어났다.
마치 과일나무를 접붙이는 것처럼 사육이 잘 안 되는 미호종개 생식기관을, 번식력이 강한 미꾸라지에 이식해 치어를 생산한 것이다.

미꾸라지가 생산한 알과 정자로 만든 미호종개 수정란 [국립생물자원관]

미꾸라지가 생산한 알과 정자로 만든 미호종개 수정란 [국립생물자원관]

연구팀은 지난달 이 치어를 자연 상태의 미호종개와 비교한 결과, 유전자가 일치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연구팀 여주홍 과장은 “앞으로 유전자 외에도 생식능력이나 수명 등에서 자연 미호종개와 차이가 없는지를 확인하는 후속 연구가 끝난 뒤 자연에 방류할지를 판단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현재는 7576마리 치어 중 47마리가 사육실에서 보호를 받고 있다. 나머지 7529마리는 유전자 분석 등에 활용됐다.

미꾸라지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미호종개 [국립생물자원관]

미꾸라지 대리모를 통해 태어난 미호종개 [국립생물자원관]

미호종개는 1984년 충북 금강수계 미호천에서 처음 발견됐으며,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분포하는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잉어목(目) 미꾸릿과(科)에 속하는 민물고기로 몸길이는 8~10㎝다.
최초 발견 당시에는 미호천에 많이 서식하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현재는 수질오염과 하천개발 등으로 인해 현재는 거의 절멸 상태에 있다.
연구팀 이승기 연구사는 “어린 물고기에 생식줄기세포를 이식해 번식시킨 기술은 종전에도 있었지만 거의 다자란 물고기(미꾸라지)에 이식한 경우는 이번이 세계 최초”라고 말했다.
이식 후 치어를 기르기 위해 시간을 많이 들일 필요가 없어 빨리 번식시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국립생물자원관, 멸종위기종 번식 #사육 까다로운 미호종개 생식기관을 #잘 자라는 종에 이식하는 기술 개발

한편 연구팀은 이번에 물고기의 생식줄기세포를 영하 196도 초저온 상태로 동결한 뒤, 다시 꺼내 활용하는 기술도 확보했다. 미호종개 외에도 멸종위기종 Ι 급인 감돌고기와 퉁사리, 멸종위기종 Ⅱ급인 열목어의 생식줄기세포를 보관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할 수 있게 됐다.

강찬수 환경전문기자 kang.chansu@joogn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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