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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 압박 의혹에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 사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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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법개혁을 요구하는 판사들의 법원 내 학회 활동을 위축시키려 했다는 의혹을 받아 온 임종헌(57·사진) 법원행정처 차장이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임 차장은 법원 안팎에서 대법관 후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동안 대법관 후보 평가 받았지만 #학회 방해 논란에 재임용 신청 철회 #“억울하지만 조사 성실히 임할 것”

임 차장은 이날 전국의 판사들에게 “법관 재임용 신청 의사를 철회했다. 오는 19일은 제가 청운의 꿈을 품고 법관의 길에 들어선 지 꼭 30년이 되는 날이다”로 시작하는 e메일을 보냈다. 임 차장이 재임용 신청을 철회했기 때문에 19일에 자동적으로 판사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법관은 10년 주기로 재임용을 신청해야 지위가 유지된다.

임 차장은 “최근 언론 보도 이후 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참으로 참담한 시간을 보냈다. 제 평생 가장 큰 불신과 비난을 받으면서 스스로를 해명하고 강변하고 싶은 억울하고 괴로운 심정이면서도 진심을 전달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의혹과 불신을 야기할지 모른다는 우려와 걱정에 충분한 말을 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또 “퇴임 의사와 무관하게 이번 일과 관련한 조사에 성실히 임할 것이며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실 조사에 의한 결과를 수용하고 책임질 일이 있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고 덧붙였다. 임 차장은 이 e메일을 보낸 뒤 짐을 정리해 대법원 청사를 떠났다.

임 차장은 판사 450여 명이 참여하고 있는 법원 내 최대 학술조직인 ‘국제인권법연구회’가 전국 법관을 상대로 ‘사법 독립과 법관인사제도에 관한 설문조사’를 하자 지난달 법원 정기인사에서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발령 난 이모 판사에게 이 단체의 모임을 축소시키도록 권유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일부 판사들은 이 판사가 이에 반발해 사의를 표명하자 그를 원소속 법원으로 돌려보냈다는 의혹도 제기하고 있다 .

이런 의혹에 대해 임 차장은 “결코 부당한 지시를 한 적이 없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고영한 법원행정처장도 7일 법원 통신망에 “(대법원은) 해당 판사에게 연구회 활동과 관련해 어떠한 지시도 한 적이 없다”는 공식 입장을 내놨다. 이 판사는 이튿날 “저의 인사 발령 등에 대한 언론 보도는 모두 저의 의사와 무관하게 보도된 것”이라며 “제가 경험한 부분에 대하여는 어떤 방식으로 말씀드리는 것이 옳은지 고심하고 있다”는 글을 올렸다. 이후 이 판사는 입장을 밝히지 않고 있다.

이에 대법원은 이인복(61·사법연수원 석좌교수) 전 대법관에게 진상 조사를 맡겼다. 이 전 대법관은 양승태 대법원장에게 임 차장을 진상 규명이 될 때까지 직무에서 배제해 달라고 요청했고, 대법원장은 지난 13일 이를 받아들였다. 임 차장은 그날 대법원장에게 사의를 밝혔으나 반려됐다. 본격적 진상 조사는 다음주에 진행된다.

법원행정처는 사법행정을 총괄하는 대법원 산하 조직이다. 처장 바로 아래에 있는 차장은 행정처 업무를 실질적으로 총괄한다.

문병주 기자 moon.byung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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