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보영은 ‘귀여움’이란 단어의 현신으로 받아들여지는 배우다. 일명 ‘멍뭉미’라 불리는 강아지상 외모와 경쾌하고 다정한 목소리가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아주 오랫동안 ‘국민 여동생’ 타이틀을 보유한 스타인 만큼, 남녀노소 모두에게 밝고 긍정적인 기운을 불어넣는다.
관객 800만 명을 돌파한 ‘과속스캔들’(2008, 강형철 감독), 감성 연기로 눈길을 끈 ‘늑대소년’(2012, 조성희 감독), 사회 초년생의 좌충우돌 수난기를 다룬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2015, 정기훈 감독) 등의 영화부터 극과 극의 캐릭터를 오갔던 ‘오 나의 귀신님’(2015, tvN) 등의 TV 드라마까지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단단한 필모그래피를 구축해 왔다. 그런 박보영이 ‘힘쎈여자 도봉순’을 통해 승부수를 띄웠다. 대체 불가의 매력 포인트인 귀여움에 블록버스터 히어로의 전유물이던 초능력 같은 괴력을 결합한 캐릭터로 말이다.
TV보는 남자
집안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신성한 그러나 위험한 힘. 이 괴력을 유전인자로 물려받게 된 도봉순(박보영)은, 마치 현실 속 ‘엑스맨’ 같은 존재다. 겉보기와 다르게 무시무시한 괴력을 타고났지만, 만약 그 힘을 선하지 않은 일에 사용한다면 예상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은 이미 봉순의 조상들을 통해 입증됐다. 봉순의 어머니 황진이(심혜진) 역시 초인급 역도 선수로 잘나가다 어느 날 갑자기 괴력을 잃었다. 나쁜 목적으로 그 힘을 썼기 때문이다. 엄마의 염려 속에 27년간 괴력을 숨긴 채 조용히 살아온 봉순. 그가 자신의 힘을 사용하게 되면서 극에는 단단한 근육이 붙는다. 로맨틱 코미디 장르에서 손쉽게 활용하는 성(性) 역할 바꾸기의 익숙한 재미를 뛰어넘어, 여성 주인공에게 수퍼 히어로의 특성을 부여해 전복적 쾌감으로 질주하는 것이다.
귀엽고도 당찬 여자 주인공, 그에게 점점 빠져드는 ‘츤데레 재벌’ 남자 주인공, 그들 곁에서 한 축을 이루는 또 다른 매력의 서브 남자 주인공 등 ‘힘쎈여자 도봉순’의 인물 관계도는 기존 로맨틱 코미디와 다르지 않다. 그런데 ‘힘쎈여자 도봉순’은 이 진부함을 여성 캐릭터의 참신함으로 ‘뒤집기 한판승’ 해내는 느낌이다. 괴력의 소유자인 동시에 현실이 버거운 ‘취준생’이고, 정의로운 동시에 주체적 캐릭터인 봉순. 이 캐릭터의 속 시원한 활약은 사이다를 넘어 탄산수로 샤워하는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극 중 봉순은 누군가에게 이끌려 자신의 결정을 유보하지 않는다. 그와 동시에 스스로를 믿고 책임지는 존재이기도 하다. 또한 블록버스터의 히어로처럼 코스튬으로 위장하는 법도 없다. 힘이 세다는 사실 말곤 딱히 특별할 것 없는 현실밀착형 히어로. 최근 큰 인기를 얻고 있는 TV 드라마 ‘김과장’(KBS2)처럼, ‘힘쎈여자 도봉순’ 역시 우리 주변 누군가가 펼치는 활극 같다. 심지어 TV 드라마 ‘막돼먹은 영애씨’ 시리즈(2007~, tvN)에서 영애(김현숙)가 차마 해결하지 못했던 사건도 봉순은 손가락 하나로 해결한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쾌감이 짜릿하기 그지없다.
글=진명현
노트북으로 드라마, 예능, 다큐멘터리 등 장르 불문하고 동영상을 다운로드해 보는 남자. 영화사 '무브먼트' 대표. 애잔함이라는 정서에 취하면 헤어 나오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