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의 자택 정치는 세대 게임의 진지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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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현 시국을 '세대 게임'으로 해석한 전상진 서강대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현 시국을 '세대 게임'으로 해석한 전상진 서강대 교수.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박근혜 전 대통령의 이른바 '자택 정치'는 세대 게임의 진지를 구축하고 있는 것이다."

3개월간 이어져 온 탄핵정국은 이념 대립뿐 아니라 한국 사회 해묵은 세대 갈등을 드러냈다. 촛불 집회엔 2040이 주축을 이뤘고 태극기 집회엔 60대 이상이 모여 흡사 '세대 전쟁'의 양상이었다. 탄핵에 대한 의견이 갈려 부모와 자식 간 냉기류가 형성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파면 결정이 내려진 후에도 대립은 수그러들지 않아 박 전 대통령 자택 주변을 에워싼 고령의 지지층은 "탄핵 불복"을 외치고 있다.

'세대게임'으로 현 시국 진단하는 서강대 전상진 교수 #

왜 세대 갈등은 심화할까. 태극기를 든 이들은 그저 '수구꼴통'에 불과한 것일까. 이에 대해 전상진(55) 서강대 교수는 "정치세력이 세대 대결을 부추기는, '세대 게임'이 한국에서도 본격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과연 세대 게임의 마지막 승자는 누구일까. '세대 사회학'(Generation Sociology)의 대표 학자인 전 교수로부터 그 원인과 전망을 들어봤다. 전 교수는 5월경 책 『세대 게임』을 출간할 예정이다.

전 교수는 세대 사회학(Generation Sociology)의 권위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 교수는 세대 사회학(Generation Sociology)의 권위자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왜 '세대 게임'인가.
블레임 게임(blame game)이란 말이 있다. 문제가 터졌는데 이를 해결하려고는 하지 않고 책임 공방만 벌인다는 뜻이다. 국가 부채가 심각하면 이를 줄이려 하지 않고 '전 정권이 저질렀다'며 떠넘기는 식이다. 현재 한국 사회가 그렇다. 특히 상당수 문제의 근원을 세대 갈등으로 몰고 간다. 대표적 예가 일자리다. 기성세대가 버티고 있어 청년 실업률이 높아진다는 주장이 횡행한다.
세대 갈등이 있는 건 사실 아닌가.
어디든 갈등은 있다. 견해차가 전혀 없는 청정사회는 오히려 죽은 사회다. 문제는 갈등 자체가 아니라 실재하는 갈등보다 그걸 과장하고 호도하기 때문이다. 갈등을 조장해 이득을 보는, 게임을 즐기는 이들이 있다는 얘기다.
왜 '세대 게임'을 벌이는 걸까.
말랑말랑하기 때문이다. 빈부격차를 예로 들어보자. 이는 전형적인 계급갈등이다. 하지만 계급은 다소 추상적이며, 해결은 부자의 몫이다. 반면 세대는 눈에 보인다. '너 몇살인데'라며 나이부터 따지는 한국에선 더욱 친숙한 도구다. 양극화에 세대라는 프레임을 적용하면 그럴 듯해 보이면서도 가진 자의 책임은 약화시킨다. 내가 '세대 게임'이라고 명명한 건 대부분의 사회 문제를 세대갈등으로 단순화시켜선 안 된다는 역설이다.
전 교수는 고령층의 항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 교수는 고령층의 항변에 귀 기울여야 한다고 역설한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그럼 태극기 집회에 노인층이 몰려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노인 실태를 객관적으로 살펴보자. OECD 국가중 대한민국의 노인빈곤률과 노인자살률은 압도적 1위다. 경제적 빈곤뿐 아니라 'N포세대' '흙수저' 등 사회적 담론은 청년층에게만 쏠려 있다. 사회적 소외이자 연령 차별주의다. 억하심정이 쌓일 수 밖에 없다. 그 와중에 방아쇠가 당겨진 것이다. 태극기 집회는 여태 호소할 곳이 없었던 노년층의 공론장이요, 분출구였다.
그런 이유만으로 집결할 수 있었나.
디지털 소외도 작용했다. 어르신들은 카톡이나 밴드 등 폐쇄형 플랫폼을 주로 쓴다. 동년배끼리 가짜뉴스 등을 공유하면서 확증편향이 커지는 구조다. 또한 박정희 박근혜 부녀는 산업화 세대에겐 하나의 상징이다. '박근혜가 사라지면 우리 세대가 부정당한다' '어떻게 이룩한 대한민국인데 이렇게 무너질 순 없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세대의 정체성·자긍심을 박근혜 개인에게 투영시켰고, 여기에 정치인 박근혜는 산업화 세대의 언어로 화답하며 상징체계를 강화시켜 왔다. '진실은 반드시 밝혀질 것'이란 발언은 산업화 세대의 현실 불만을 볼모로 세대 게임을 계속 벌이겠다는 뜻이다.
세대 게임을 하는 건 박 전 대통령 뿐인가.
어느 한쪽만 해선 게임이 될 수 없지 않나. 진보진영도 마찬가지다. '틀니를 딱딱거린다'라며 '틀딱'이란 노인 비하 표현을 서슴없이 하곤 한다. 상대를 혐오해야 공격할 때 죄의식이 줄어든다. 또 '선거연령 18세 하향' '공직자 연령 제한' 등 젊은층을 공략하는 방안만을 내놓은 채 노인은 퇴물 취급한다. 적대적 공생관계란 세대 게임도 예외가 아니다.
대안이라면.
광장 어르신들의 절규를 경청해야 한다. 그들의 고통은 아직 덜 늙은 청년과 중·장년의 미래다. 또 양보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구별했으면 좋겠다. 이를테면 박 전 대통령 파면에 동의할 수 없어 불복종 운동을 할 수 있다. '불복 집회'까지 가능하다. 민주사회이기 때문이다. 다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면 안 된다. 그건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본질적으론 세대간의 차이를 서로 인정해야 한다. 경험이 다른데, 어떻게 같은 흔적을 가질 수 있는가. 때론 갈등하고 싸우면서 서로의 차이를 명확히 하는 게 건강한 사회일지 모른다. 양보할 수 없는 것을 지키면서 양보할 수 있는 영역을 넓히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세대 공생이다."
전 교수는 '세대'란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 말고 제 자리를 찾아 주어야 사회 문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전 교수는 '세대'란 개념을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지 말고 제 자리를 찾아 주어야 사회 문제를 온전히 바라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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