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장누구 뽑을지 사전합의하고 기표방법까지 정해 '감투 나눠먹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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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의회 의원들이 의장 등을 뽑으면서 기표방법까지 합의해 자리를 나눠 먹기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른바 ‘감투 나눠먹기’다.


13일 부산 부산진경찰서에 따르면 부산진구의회 소속 의원 19명 가운데 당시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소속 10명은 2014년 7월 제7대 부산진구의회 전반기 의장으로 강모 의원을 추대하기로 합의했다. 임기 2년이 지난 뒤의 하반기 의장에는 다른 A의원을 추대하기로 정했다. 이 같은 내용의 합의서도 썼다.

경찰, 부산진구 의회 의원 10명 입건, 검찰송치

부산진구의회는 당시 소속별로 새누리당 12명, 민주당 7명이었다. 10명의 새누리당 의원이 의장과 부의장 1개, 상임위원장 4개 자리를 누가 맡을지 사전에 공모한 것이다. 대신 합의 추대한 의원이 의장 당선에 실패하면 자신들도 부의장과 상임위원장직을 맡지 않겠다고 합의했다. 나머지 2명의 새누리당 소속 의원은 자신들이 의장에 출마할 의사를 내비치면서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10명의 의원은 이탈표를 막기 위해 교묘한 수법을 동원했다. 투표용지의 기표란 상하좌우에 기표 위치를 미리 정해 놓고 투표하는 수법이었다. 의회 의장으로 누구를 뽑고 실패하면 사퇴를 하고, 누가 누구에게 기표했는지 사후에 알 수 있게 하는 등 이탈표 방지를 위해 ‘삼중의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이들이 합의한대로 2014년 7월 8일 투표에서 의장과 부의장, 상임위원장이 선출됐다. 하지만 하반기 의장은 합의대로 선출되지 않았다. A의원이 합의가 깨진 것에 불만을 품고 부정선거 사실을 고발하면서 경찰수사가 이뤄졌고, 감투 나눠먹기가 들통난 것이다.

기초의회 의장이 되면 매월 의정활동비 외에 업무추진비 240만원을 받는다. 의장은 운전기사가 딸린 차량도 제공받는다. 부의장과 상임위원장 역시 의정활동비 외에 매월 180만원씩 업무추진비를 받는다. 의장 등은 자치단체의 각종 행사에 초대돼 발언하는 등 이른바 ‘명예’도 얻는다. 이 때문에 의장에 추대받으려는 의원이 동료 의원에게 향응이나 선물을 제공하거나 부의장·상임위원장 자리를 서로 나눠먹는 뒷거래가 수시로 일어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의 한 전직 구의원은 “합의 의장을 당선시키는 관행은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이뤄져 왔다”며 “부산은 16개 시·군·구 가운데 북구를 제외한 15곳에서 여권 의원이 과반수를 장악하면서 부정선거를 견제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의회선거에서 무기명 투표제도가 부정선거를 조장할 수 있다고 보고 재발 방지를 위해 부산진구의회에 이름을 적는 기표제 도입을 건의할 계획이다.
부산진경찰서 관계자는 “부정선거에 합의한 의원 10명을 지난 6일 공무집행 방해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며 “금고형 이상이 나오지 않으면 의원직을 유지하는데, 이번 건은 벌금형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처벌 규정이 너무 약한 것도 문제”라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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