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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는 저평가 잠재株, 바닥 찍었으니 반등할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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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2호 27면

[2017 스포츠 오디세이] 前 펀드매니저 ‘손박사’가 말하는 한국축구 시황 

서울 효창운동장 앞에서 ‘손박사 싸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손외태씨는 지름 1m, 7cm 등 다양한 공으로 훈련을 시킨다. 박종근 기자

서울 효창운동장 앞에서 ‘손박사 싸커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손외태씨는 지름 1m, 7cm 등 다양한 공으로 훈련을 시킨다. 박종근 기자

축구는 거대한 글로벌 비즈니스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직접 축구를 하거나 경기를 관람하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가입국(211개)은 유엔 회원국(193개)을 뛰어넘은 지 오래다. 지구촌 축구시장에서 오가는 돈은 1년에 약 1000조원에 이른다고 한다.


국내 프로축구(K리그)도 지난 4일 개막했다. K리그는 클래식(1부) 12팀, 챌린지(2부) 10팀으로 구성된다. 개막전인 1라운드 11경기에 13만여 명이 경기장을 찾았다. 프로야구의 기세에 밀려 있던 프로축구에 반전의 봄볕이 들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주식이론 접목해 축구 훈련법 개발 #‘손박사 싸커 아카데미’ 차린 손외태 #심리 활용한 골 결정력 특강 통해 #제주 K리그 득점 1위 등극에 기여 #“경기 질 높여야 글로벌 경쟁력 생겨”

한국 축구를 주식에 빗대면 뭐라고 할 수 있을까. 아래에 소개할 펀드매니저 출신 ‘손박사’는 “한국 축구는 저평가된 잠재주다. 바닥을 찍었으니 반등할 일만 남았다”고 말했다. 잠재주는 ‘투자자에게 이익을 거의 주지 못하나 일단 관심을 끌고 난 뒤에는 가격 상승을 기대할 수 있는 주식’을 말한다. 한국 축구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느 정도의 경쟁력을 갖고 있을까. 잠재주를 뛰어넘어 황제주로 발돋움할 수 있을까.

공 세 개로 드리블, 지름 1m 공도 사용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손외태(55)씨는 잘 나가는 펀드매니저였다. 1990년대 초반, 그는 TV로 축구경기를 보다 ‘왜 축구를 저렇게 할까. 더 잘할 수는 없나’ ‘세계적인 선수들의 움직임은 뭐가 다를까’ 하는 의문을 품었다. 그는 주식시장의 이론을 떠올렸다. ‘투자자가 불안감을 느껴 투매(投賣)를 할 때 주식을 사면 수익률을 높일 수 있다. 축구도 골키퍼와 수비수가 불안감을 크게 느끼는 상황을 만들면 골 확률이 높아지지 않을까.’

그는 호나우두·지단 등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 장면을 수백 번씩 돌려보며 꼼꼼히 분석했다. 초등학교부터 프로팀까지 쫓아다니며 경기를 보고 메모를 했다. 1만 경기 넘게 쌓인 데이터를 바탕으로 축구 이론을 정립한 손씨는 아예 증권가를 떠나 ‘손박사 싸커 아카데미’를 차렸다. 손박사는 자신의 축구 이론을 심리·행동과학·확률로 나눌 수 있다고 했다. “심리란 상대를 불안하게 만드는 움직임으로 골 확률을 높이는 방법이다. 행동과학은 최고 선수들의 동작을 분석해 빠르고 효율적으로 플레이 할 수 있도록 만든다. 확률은 골이 나올 가능성이 큰 쪽으로 움직이는 패턴을 제공하는 것이다.”

손박사의 실전 레슨은 매우 독특하다. 공 세 개로 드리블 훈련을 하는 건 고도의 집중력을 갖고 온 몸의 근육을 쓰기 위해서다. 지름 1m 대형 공, 테니스볼 정도의 작은 공으로도 훈련을 한다. 커다란 ‘8’자 모양 궤도로 드리블을 하는 동안 오른발과 왼발, 원심력과 구심력을 모두 활용하도록 프로그램했다.

손박사의 ‘족집게 과외’를 받은 유소년 선수들은 각종 대회 득점왕을 휩쓸고 연령별 청소년 대표에도 뽑혔다. 그를 거쳐간 선수 중 43명이 프로팀에 입단했다. 2015년 1월에는 K리그 클래식 제주 유나이티드 선수단에 ‘축구심리를 활용한 골결정력 올리기’ 특강을 했다. 2014 시즌 K리그에서 37골을 넣었던 제주는 2015년에는 55골을 넣었고, 지난해는 71골로 K리그 득점 1위를 차지했다. 지난 시즌 초반 K리그 최하위였던 인천 유나이티드도 5월 12일 손박사의 특강을 들은 후 7경기에서 4승2무1패로 반등의 계기를 만들었다.

“뭔가를 제대로 하면 가치 올라가는 자산주”

손박사를 향한 축구계의 시선은 여전히 차갑다. “어디서 축구를 배우기는 했냐”는 비아냥부터 “이상한 것 가르쳐 애들 망친다”는 비난까지 있다. 그러나 손박사는 “축구는 단순히 공을 차는 행위가 아니다. 문화와 사회공헌의 도구다. 또한 연 1000조원이 오가는 거대한 시장이다”면서 “축구라는 상품의 차별화 포인트는 ‘경기의 질’이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을 통해 뛰어난 선수들이 나오고, K리그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이 커지길 바란다. 한국 축구에는 정신력과 근성이라는 독특한 색깔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을 둘러싼 축구 지형은 급변하고 있다. 중국은 ‘황사 머니’를 앞세워 세계 최고 스타와 지도자를 모으고 있다. 중국 프로축구 수퍼리그(CSL)의 중계권료는 5년간(2016~2020년) 80억 위안(약 1조3000억원)이다. 일본 J리그도 지난해 영국의 퍼폼그룹과 10년간 2000억 엔(약 2조2천억원)에 중계권 계약을 맺었다. 한국 K리그 중계권료는 1년에 60억원이다. 자생력이 떨어지는 K리그 구단들은 공들여 키운 선수가 중국·일본·중동 팀으로 팔려나가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 그나마 그 선수가 벌어다 준 이적료로 구단 운영비를 보태고 유소년 선수를 키운다.

조연상 프로축구연맹 사무국장은 “지난 3년간 망가진 K리그의 토대를 다시 세우는 데 주력했다. 연고지 밀착, 유소년축구 저변확대, 전문인력 양성을 세 축으로 삼았다”고 말했다. 연고지 밀착이란 지역 주민이 축구단을 ‘내 팀’으로 생각하도록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것이다. ‘우리 동네 목욕탕 단골 손님, 우리 가게에서 커피 마시던 오빠가 뛰는 경기 보러 가자’는 인식을 갖게 하는 것이다.

K리그는 중계의 질을 높이는 데도 힘을 모으고 있다. 조 국장은 “올해 K리그 클래식 228경기 중 180경기는 중계 카메라를 10대 이상 설치하도록 계약을 맺었다. 다양한 앵글에서 박진감 넘치는 장면을 잡기 위해서다. K리그 중계 콘텐트를 동남아시아 등에 판매하는 루트도 뚫고 있다. 그 차원에서 올해 올스타전을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K리그는 개막 직전까지도 1년에 35억원을 낼 타이틀 스폰서(후원업체)를 잡지 못해 애를 태우다가 겨우 하나은행과 4년 계약을 했다. 이미 국가대표팀과 FA(축구협회)컵 대회를 후원하고 있는 하나은행은 프로 리그까지 맡아 한국 축구를 사실상 떠받치게 됐다. 김영하 하나은행 스포츠단장은 “엘리트와 생활체육이 합쳐지면서 축구 시장이 엄청나게 커졌다. 축구를 직접 하는 800만 명, 그리고 아이들을 유소년 클럽에 보내는 사커맘을 하나은행이라는 이름 아래 모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김 단장은 한국 축구를 ‘자산주(資産株)’라고 했다. 갖고 있는 건 많은데 딱히 실현시킬만한 가치는 보이지 않는 종목. 하지만 누군가 와서 뭔가를 제대로 하면 가치가 올라가는 주식 말이다.

정영재 스포츠선임기자jerr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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