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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라도 법에 승복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탄핵 판결의 핵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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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장일치 탄핵 인용이라는 뜻밖이 헌재 판결에 문인들은 한곁 같이 감동적이라는 반응을 토해냈다.

1970년대부터 민주화 운동에 앞장서온 시인 고은은 전화 통화에서 "헌재의 인용 판결 순간 TV를 함께 보던 옆에 있는 아내를 껴안았다. 이제 새 역사가 시작되어야 한다. 특히 헌재 판관들의 전원 합의라는 도출이 참 아름답다. 이제는 그동안 있었던 어지러운 일들을 빨리 해결하고 청소를 해야 새로운 집기도 들여 놓고 촛불도 들여놓고 제단도 만들지 않겠나. 잔재, 여러 흔적들을 쓸어낸 다음에 우리의 새로운 공간 만들어야겠지"라고 말했다. "참 살아오면서 늘 벅찬 역사의 변동만을 만나니까 참 살기 힘든 시대를 살고 있구나 하는 생각도 든다. 어려서 일제시대 겪었고, 만주사변, 중일전쟁, 대동아 전쟁에 이은 해방, 6·25, 4·19, 5월 광주까지 끊임 없이 조금이라도 일상이 성립될 만하면 역사가 용트림을 하고 화산처럼 솟아났다. 이게 우리 현대사의 젊은 활력, 청춘의 활력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우리나라 같은 나라가 어디 있나. 이웃 일본 같은 나라는 늘 그냥 조용하게 하루하루 사는 것밖에 없지 않나. 어찌 보면 만연된 보수로 사는데 우리는 늘 새로운 것을 모색하고 탐구한다. 이런 참 거센 역사 속에서 사는 거센 삶의 의지도 중요하다"고 했다. "반드시 어떤 사람의 죽음을 통해서라기보다 유신이 끝났을 때 짧은 착각이 빠져 서울의 봄이 찾아왔었는데 그때는 참 뭔가 불안하기만 했었다. 결국 전두환 신군부가 나타났는데, 돌이켜보면 그래도 6월 항쟁이 참 좋았다. 대학생뿐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도 함께 한 새로운 현상이었다. 그 때 만들어진 '87 체제'가 지금까지 이어진 건데 이제 그 체제가 한계가 온 것, 새로운 체제를 만들라는 역사의 지표를 이번에 헌재가 내려줬다고 생각한다. 어디 가서 막걸리라도 한 잔 해야겠다"고 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는 "아주 감동적으로 판결 지켜봤다. 이번 대통령 탄핵은 피 흘리지 않은 제2의 민주혁명, 이제 박 부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 대통령은 다 잘못을 저질러 이번처럼 탄핵당하기도 하고 형무소에 들어가기도 하고 모두가 다 불행한 결말을 맞는데, 그래도 국민이 훌륭해서 지금의 우리 나라가 가능했던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을 오늘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앞으로의 대립·갈등이 문제인데 모두가 다 얘기하는 것처럼 이번 판결에 승복해야 한다. 법에 승복한다는 것이 바로 이번 탄핵 판결의 요점, 핵심 아닌가. 국민들도 법에 승복해서 갈등을 경쟁으로 바꾸고, 민주주의라는 것이 이견이 있더라도 서로 보완의 관계 속에 하나의 한국 형성을 형성할 수 있다는 점을 이번 기회에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

시인 문정희씨는 "탄핵 인용 순간 울컥 했다. 실은 감격해서 조금 울었다. 이제 젊은이들에게 어른들이 좀 부끄럽지 않아야 되지 않나. 특히 만장일치라는 점이 너무 좋다. 어떤 표결이든 만장일치 결과가 나오면 늘 어떤 의심 같은 걸 갖고 있었는데 이번만은 만장일치가 아름다워 보인다. 떨린다. 너무 감동적이다. 그동안 너무 설득이 안 되는 상황들이 벌어졌고, 왜 라는 질문을 수 천 번 하고 살아야 하는 시간을 보내지 않았나. 이제 그런 시대가 지난 거다. 앞으로는 기본으로 돌아가서 인문학이 확고하게 자리잡은 지적인 나라가 되도록 지성의 회복의 힘써야 한다. 누가 새 대통령이 되든 폭넓은 국제 감각, 통찰과 지혜를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인 나희덕씨는 "겨우내 주말 반납하고 추위에 떨면서 촛불을 들었던 국민이 이뤄낸 결론이라고 생각한다. 문화계 블랙리스트도 진상이 철저히 밝혀져, 누구에게나 공정하게 기회가 주어지고 부당하게 배제당하지 않는 최소한의 원칙과 통치, 그런 게 이뤄지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우리 나라처럼 이데올로기가 일상적으로 들어와 있는 나라도 드물 거다. 식당 같은 데서 말 한 마디 잘못했다가 시비 붙을 수도 있다. 그런 갈등과 대립도 결국 대화로 풀어야 한다는 생각밖에는 없다"고 말했다.

소설가 김연수씨는 "탄핵 인용 순간, 역사적 순간이구나, 역사적 순간을 지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사회가 한 단계 높아지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직접 뽑는 민주화를 이뤄낸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었는데 이번 일을 계기로 어떤 법률 위반이 생겼을 때 대통령을 해임할 수도 있는 사회가 됐다는 생각 들어서 나라가 좀 더 한 단계 발전한 듯한 느낌 들었다. 앞으로 혼란이 불가피할 텐데 혼란이라고 다 나쁜 것 아니니까, 왜냐 하면 혼란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배우는 것도 있을 거고 더 나아질 수도 있으니까, 잘 수습하는 게 중요하다. 혼란을 피한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라고 말했다.

 헌재의 탄핵 인용 내용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도 있었다. 소설가 이승우씨는 "헌재의 판결문이 알기 쉽게 잘 쓰인 논설 교과서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라고 평했고, 소설가 은희경씨는 "너무 설득력 있고 논리에 맞는 판결문이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무능한 것 갖고 탄핵할 수는 없지만 법 위에 초법적 존재가 있을 수는 없다는 얘기 아닌가. 그런 점을 설득력 있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평했다. 특히 은씨는 "내가 어떤 때 흥분하는지 알아보려고 재미 삼아 혈압을 자주 재는 편인데 헌재의 판결 순간 90까지 올라갔다. 보통 때는 60, 70 정도다"라고 말했다.

페이스북에는 좀 더 가볍고 발랄한 글들이 계속해서 올라오고 있다. 계정을 가진 문인들은 모두 한 마디씩 올리는 분위기.

시인 최정례씨는 "우리 나라 좋은 나라 나 이제 우리 나라 욕 안 할 거다"라는 짤막은 문장을 올렸고, 시인 김점용씨는 "아, 눈물 난다 ㅠ"고 썼다. 소설가 김덕희씨는 "이런 밀당쟁이들! 놀랐잖아요 ㅜㅜ"라는, 헌법재판관들을 거론한 듯한 느낌의 글을 올렸다. 결국 만장일치 탄핵 인용 판결을 내릴 거면서 예측의 여지를 전혀 주지 않아 마음 졸였던 시간들을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시인 임동확씨는 "파면,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오늘 하루만은 맘껏 울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민국 만세"라고 했고, 시인 안현미씨는 탄핵 결과를 두고 내기를 했었던 듯 "10만원 잃었다! 근데 왜 기쁘지?"라고 썼다. 시인 김민정도 "눈물난다…"고 했다.

소설가 이응준씨는 "탄핵이 인용되어서 다행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탄핵이 인용됐으니. 잔치 벌이지들 말고 조용히 흩어져 집으로 돌아갔으면 좋겠다. 그게 여러 모로 모두에게 이득이 되지 않겠는가. 지혜로운 것까진 바라지 않아도. 어리석진 않아야 되지 않겠는가"라고 차분함을 강조하는 글을 올렸다.

문학평론가 조재룡씨는 "열번 넘게 (판결문을)읽고 있다. 감동적이다. 박근혜 때문에 두 번 울었다. 대통령 당선되었을 때 한 번, 오늘 탄핵되어서 한 번!!!! 도망치지 못하게 빨리 구속하라! 자연인 신분? 웃긴다. 범죄자 신분! 전용기 엔진 빼라!"라는 글을 올렸다. 평론가 권성우씨는 판결 과정을 지켜보며 실시간 글을 작성한 듯 하다. "불안하지만 가장 중요한 말은 나중에 나온다고 본다. 아 파면이네요. 8-0으로…눈물이 나네요. 이제 새로운 한국현대사가 시작되어야겠지요…. 세계 어느 곳에서도 없었던 촛불의 승리이자 위대한 민주주의의 승리이다…오늘의 역사적 사건에 자부심을 느낄 만하다…헬조선을 민주주의와 평화, 복지, 배려, 문화가 꽃피는 나라로 만들어 갑시다”라고 썼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문인들, 한결 같이 헌재의 탄핵 판결에 찬성 반응 #문학평론가 김병익 "피 흘리지 않은 제2의 민주혁명…이제 박 부녀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시인 고은 "한계에 이른 87년 체제, 새로운 체제 만들라는 역사의 지표" #소설가 김연수 "혼란 있겠지만 배우는 점도 있을 테니 혼란이 나쁘지 않다" #페이스북에는 '눈물 난다" 등 좀 더 가볍고 발랄한 반응 쏟아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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