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법통논쟁 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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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한국불교 수행가풍의 정통성 문제와 진조·대고론으로 양분돼있는 종조논쟁이 새삼 가열되면서 2O세기 한국판 돈점쟁논이 전개되고 있다. 쟁론의 당사자는 태고종조론에 돈오돈수 (한꺼번에 진리를 증득, 성불하는것)를 주장하는 이성철 조계종 종정중심의 해인총림과 보조·종조-돈오점수 (깨친 후에도 수행을 계속함)의 수행방법을 정맥으로 내세우는 법정스님중심의 조계총림.
뜨거운 논전이 벌어진 계기는 지난2월 창립된 조계총림 송광사부설 진조사상연구원 (원장 법정스님)이 23,24일 제1회 학술발표회를 갖고 불교 조계종의 법통문제와도 관련되는 이들 양대문제를 본격 부각시키면서 철저한 연구와 재검토를 착수한데서 비롯됐다.
「보조사상연구의 회고와 전망」을 주제로 한 이번학술대회는 천주교 김옥희수녀 (수원가톨릭대 교수) 까지 15명의 국내 불교·종교학자들이 참석, 주체발표와 토론을 통해 보조사상연구의 현수소를 확인하면서 돈오돈수 지향의 수행방법론을 비판했다.
법정스님은『부처님의 경우 보리수 아래서의 깨달음은 돈오에 해당하고45년 동안 교화활동으로 무수한 중생을 제도한 일은 점수에 해당한다』고 전제하고 『교단 일각에서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아직도 보조의 돈오점수사상을 놓고 왈가불가하는 의견이 없지 않지만 종교의 근본은 공허한 말끝에 있지 않고 투철한 체험과 실천적 항에 있음을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법정스님의 이 같은 주장은 이종정이 저서 『선문정노』 (81년· 해인총림간) 에서 『보조지눌은 하택신회(685∼760·중국스님) 의 지해종도요, 돈오점수란 사설을 논하고 불조를 거역한 자라조계의 적자 혜능 (638∼713·중국스님)을 바로 이해하지 못했다』고 질타한데 대한 「응답」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종정은 한국불교선가의 수행가풍 정맥을 육조 혜능과 임제선사로 이어지는 돈오돈수의 경절문이라고 못박고 그 법맥의 계승이 대고보우(1301∼1382·고려말스님)로 이어졌다고 주장, 현재 종헌에서 진조지눌(1158∼1210·고려중기 스님)을 종조로한 조계종의 종조문제는 잘못돼있다는 입장이다.
『선문정노』 는 『임제의 삼구·삼요·삼현이나 조동의 오위나 모두 정안종사가 깨침의 세계를 여는 전기대용이지 법문의심천이나 오입의 차제에 배정함은 망발』 이라고 주장하면서 종밀 대혜선사(중국) 의 영향을 받은 보조의 선 체험이나 사상은「사도」 라고 몰아 붙였다. 이종정의 보조에 대한 이 같은 질타는 지금까지 한국불교 선종의 맥을 선교일원론과 돈오점수론을 수용한 보조에 두어온 조계종의 선수행 가풍에 일대의 충격을 주는 「폭탄선언」이기도 했다.
심재룡교수 (서울대) 는 보조사상연구원 학술대회주제발표에서 『진조에 있어서는 선과 교란 대립되는 두 사상이 아니라 불조의 말씀과 마음이라는 일원적 체계였다』고 강조하고 원래의 보조사상체계가 후대에 와서 여러 차례 왜곡되었음을 지적했다.
보조가 하택을 지해종도 인줄 알면서도 수용한 것은 참선의 화두공부가 산종병에 빠지지 않고 원만성취할 수 있는 처방을 마련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심교수는 『보조의 삼현인 체중현 (경전공부) 구중현 (참선수행)현중현(침묵의 깨침) 이 후대에 염불문까지 추가, 왜곡됨으로써 불교의 질을 저하시켰다』고 지적하고 돈오의 깨침을 우위적으로 수용하면서도 깨친 후의 수행을 강조한 본래의 보조사상으로 돌아갈 것을 거듭 강조했다.
법정스님은 점수를 「신앙실천」으로 해석, 『자기 혼자서 돈오돈수로 그친다면 그것은 올바른 수행도 아니고 지혜와 자비를 생명으로 삼는 대승보살도 아니다』고 단정하면서 보조의 『원돈성불론』을 인용,『언교를 따라 종일토록 논쟁한다할지라도 다만 승부의 마음만 더할 뿐 일생을 헛되이 보내고 말 것』 이라는 돈오돈수 비판의 한 소식을 전했다.
이종익박사 (전 동국대교수) 는 『이종정이 돈오점수 간화선을 하면서 한국간화선맥의 유래를 모르는데 크게 놀라게 됐다』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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