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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최우석칼럼

한·미 FTA협상 시작을 보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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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국과 미국이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을 개시키로 한 것은 새해의 좋은 출발신호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출발이 좋다 하여 결과까지 좋으리란 보장은 없다. 이미 일본과의 협상에서 한번 쓴 경험을 한 바 있다. 일본과의 FTA 협상은 출발도 좋았고 처음엔 잘 나가는 것같이 보였다. 당초 목표는 2005년 말까지 타결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6차 회의까지 끝낸 2004년 10월 이후 통 진전이 없다. 언제 다시 회의가 열릴지 기약도 없이 그냥 없는 듯이 방치되어 있는 것이다. 겉으론 농산물 협상이 잘 안 되는 것이지만 실제론 정치적 요인이 많다. 독도 문제와 야스쿠니신사(靖國神社) 참배 문제로 협상 분위기가 깨져 버린 것이다. 상당히 진전된 일본과의 협상은 그냥 둔 채 미국과 새로 협상을 시작하는 것이므로 성공하지 않으면 나라가 싱겁게 될 수 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도 암초는 많다. 경제적 협상에도 여러 파란이 예상되지만 최근 일부에서 일고 있는 반미 무드가 큰 위협이 될 수 있다. 이런 여건에서 한.미 FTA를 성공적으로 타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가장 먼저 이번 FTA 타결을 국책의 우선순위로 정해야 한다. 물론 국책이니까 협상을 개시한 것이지만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우선 정부 안에서부터 콘센서스가 모여야 하는 것이다. 이번 협상이 국가전략으로 긴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타결해야 한다는 합의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벌써부터 정치적.경제적으로 여러 장애 요인이 예상되고 있다. FTA 타결로 인한 불특정다수의 큰 이익은 특정소수의 작은 불이익에 묻히기 쉽다. 이들의 절규나 목소리는 매우 크다. 벌써 공청회도 무산되는 분위기다. 또 선거철을 앞두고 표를 의식해 얼마나 많은 꾼들이 설칠 것인가. 이런 난관을 돌파할 정부의 굳은 의지와 용기가 필요한데 이 점에서 모두 자신을 못하는 것이다.

둘째는 매우 힘센 사람이 사령탑을 맡아야 한다. 협상은 통상교섭본부에서 하겠지만 힘 있는 데서 뒷받침해 줘야 한다. 대외교섭 못지않게 대내교섭이 어려울 것이다. 얼마나 많은 부처와 이익단체들이 관련되어 있는가. 기존 이익을 보호하려는 관료들의 저항을 깨고 달래가며 일을 해가야 한다. 어떨 땐 싸우고 어떨 땐 협상하고 또 어떨 땐 채찍이 필요할지 모른다. 이런 다양한 전략을 구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 과거엔 밑에 맡겨 놓고 "왜 이리 시끄러우냐, 원만하게 합의해 처리하라"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돌파력이 생길 수가 없었다. 끗발 있는 사람이 책임을 맡아 교통정리를 해 주어야 한다. 각 부처에선 부분적인 옳음과 이익을 고집할 수밖에 없으므로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포기시킬 건 포기시키고 살릴 것은 살려야 하는 것이다. 이 일은 중요하나 악역이기 때문에 아무나 할 수가 없다. 물론 최종적인 결단은 대통령이 해야겠지만 사령탑은 아무래도 요즘 힘 있는 총리가 좋을 것 같다. 대미 협상의 중요도나 어려움에 비추어 볼 때 특히 그렇다. 옛날 같으면 경제부총리가 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요즘 워낙 힘을 빼놓아 그런 일을 맡아 하기도 어렵게 되어 있다.

셋째로 스케줄을 잘 잡아 전략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일단 대미 협상은 내년 봄까지 타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거기에 맞춰 역순으로 일하는 일정을 잡아야 한다. 대외 협상과 대내 협상은 같이 가는 것이므로 총괄적 타결이 필요하다. 거기엔 재정.금융.행정 지원을 병행해, 줄 것은 화끈하게 주고 설득할 것은 설득해야 할 것이다. 엄살과 무임승차도 막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속한 결단이다. 몇 시간씩 회의해 놓고 "우리 다 같이 고민해 봅시다"하는 식으로는 결코 시간을 댈 수 없을 것이다. 이번 대미 협상을 스케줄대로 타결할 수 있으면 한국은 여러 이익과 국제적 신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내 사정 때문에 암초에 걸리는 사태가 벌어진다면 당초 시작 안 한 것보다 훨씬 못한 손해와 신용 추락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최우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