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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뉴얼 안 지켜 주민 불안 키운 의령소방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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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불금’이 지나고 토요일이던 지난 4일 새벽 경남 의령군 의령읍 우진빌라 2층에서 발생한 화재로 주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취약 시간에 발생한 화재가 자칫 참사로 번질 뻔했으나 일부 주민들이 잠든 다른 주민들을 신속히 깨워 피해를 줄였다. 이날 화재로 주민 4명이 병원 치료를 받았고 재산피해를 조사 중이다.

안전등급 꼴찌 의령군 재난 비상 #“살려달라 외쳐도 소방관 무대응” #피해 주민들 늑장 구조에 분통 #소방서장 “인력·경험 부족 개선할 것”

주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소방서의 행태가 불안감을 키웠다고 보기 때문이다. 발 빠른 구조작업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의령소방서 측은 일부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았을 뿐 구조작업에 큰 문제가 없었다고 반박한다.

경남 의령군 우진빌라 5층에 사는 주민이 화재 당시 구조요청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사진 위성욱 기자]

경남 의령군 우진빌라 5층에 사는 주민이 화재 당시 구조요청 모습을 재연하고 있다. [사진 위성욱 기자]

본지의 현장 확인 취재에서 소방서의 소방매뉴얼(소방표준작전절차)이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실이 드러났다. 화재 현장 피해자들에게 구조상황을 설명해줘야 하는데도 이를 이행하지 않았다.

의령군은 국민안전처가 해마다 조사하는 전국의 지역 안전등급(화재 분야)에서 2015과 2016년 2년 연속 모두 최하위인 5등급을 받았다. 안전등급은 화재 발생과 사망자 수 등을 고려해 매긴다. 전국 82개 군 지역 가운데 5등급을 받은 곳은 2015과 2016년 각각 8곳뿐이다.

가뜩이나 안전등급이 꼴찌인 의령의 공동주택에서 불이 났는데 소방공무원의 대응과정이 실망을 주면서 주민들은 불안해 할 수 밖에 없다며 대책을 호소한다.

화재가 난 지난 4일 오전 1시 48분 119에 화재신고가 접수되고 53분에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했다. 불이 난 빌라 건물의 1~2라인 10가구 주민 대부분이 탈출한 뒤였다. 일부 주민이 다른 주민을 깨운 덕분이다. 하지만 4층 주민 전모(44)씨와 아들(11), 5층 주민 장모(56·여)씨 등 3명은 복도에 가득한 연기 때문에 탈출을 못 한 상황이었다.

전씨 등 3명은 소방차가 도착하자 안방 창문과 베란다 등에서 “살려 주세요”라며 구조를 요청했다. 그러나 무전기를 든 소방관들은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구조자에게 어떤 식으로 구조가 진행되고,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도 않았다며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4층 주민은 소방차 도착 20여분 뒤, 5층 주민은 30분이 넘어 구조됐다.

장씨는 당시 “구조 상황을 알지 못해 사다리차가 오지 않으면 5층에서 뛰어내려야 하느냐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언제 구조될 지 몰라 공포·불안에 떨었다는 얘기다.

주민들은 “소방관들이 산소호흡기를 안 가져왔다” “소방차에 물이 없어 구조와 진압이 늦어졌다”며 소방관들의 부실한 대응을 질타했다.

당시 소방차 등에 설치된 블랙박스 영상과 119종합방제센터에 녹취된 무전 등을 종합하면 구조대원 2명이 도착 직후부터 구조 활동을 했다. 빌라 앞에 펌프차와 물탱크차 등이 배치돼 화재진압도 했다.

하지만 구조대원들은 4층 주민을 구조한 뒤 바로 5층으로 가기에는 산소통의 산소가 모자란다고 판단해 3~4분이 더 걸려 산소통을 교체했다고 주장했다.

자칫 생사가 갈릴 수 있는 위급한 상황에서 물탱크차가 펌프차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본 피해자들이 “소방관들이 제대로 준비도 하지 않고 출동했다”고 여겼을 수 있다고 소방서 측은 해명했다.

구조 인력과 공동주택 화재 진압 경험이 부족한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인근 소방서의 지원이 많은 도시에선 동시 다발적 구조가 가능한데, 의령소방서는 야간에 구조 인력이 2명 밖에 없어 구조가 상대적으로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경남소방본부 예방대응과 관계자는 “공동주택 화재가 거의 없는 의령에선 실전 경험과 인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의령에선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공동주택 화재는 2건 발생했다.

이수영 의령소방서장은 “현장에서 구조와 화재진압 상황을 입주민에게 소방매뉴얼대로 제대로 설명하지 않아 오해가 생긴 것 같다”며 “이번 화재에서 드러난 문제점을 해소하는 방안을 찾겠다”고 말했다.

의령=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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