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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시리즈에 ‘창작ing’ 더해 다양한 스펙트럼 실험 나선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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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06면

정동극장이 젊어진다. ‘외국인 관광객 대상 전통공연장’이라는 틀을 올해부터 벗고 ‘동시대 전통 창작공연의 산실’을 표방하고 나섰다. 1995년 한국 최초의 근대식 극장인 원각사 복원의 역사적 의미를 내세워 덕수궁 돌담길에 세워진 정동극장은 그간 관광업계에서 ‘MISO: 미소’ 브랜드로 유명했다. ‘춘향연가’ ‘배비장전’ 등 매년 하나의 작품에 집중해 단체 관광객들에게 한국 전통문화를 알리는 단일 콘텐트 상설 공연장으로 기능해 온 것이다.

정동극장의 변신

이다엔터테인먼트 대표·한국공연프로듀서협회 회장을 역임하고 지난해 6월 취임한 손상원 극장장은 이런 운영 노선을 이원화했다. 기존 ‘MISO: 미소’ 브랜드를 이어 완성도 높은 전통공연을 제작하는 ‘정동극장 전통시리즈’를 유지하되, 젊은 창작자 발굴과 창의적 콘텐트 개발에 역점을 둔 ‘창작ing’라는 또 다른 축으로 우리 예술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다.

지난달 28일 기자간담회에서 손 극장장은 “정동극장은 공공극장으로서 관광객에게 한국 전통을 보여줘야 하는 미션과 국내 관객에게도 전통을 보다 친근하게 제시하는 두 가지 숙제가 있다”며 “관광 시장이 활황일 때는 외국인을 주요 대상으로 했지만 이제 시장이 불안정하고 관광객 대상 콘텐트도 많아져 국내 관객에게 다가가는 역할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단체 손님 중심이던 관광업계 트렌드가 최근 50% 이상 개별 관광객으로 옮겨오면서 여행 상품으로서의 입지도 애매해졌다. 이래저래 마케팅 타깃 전환이 극장의 최우선 과제가 된 셈이다.

신설된 ‘창작ing’ 프로그램은 가능성 있고 도전적인 창작진과 콘텐트를 개발하는 제작 지원 사업으로 여러 장르에서 다양한 가능성을 실현하는 장이 될 전망이다. 첫 작품으로 1일 개막한 ‘적벽’(26일까지.사진)은 판소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를 한바탕 쇼로 재해석했다. 지난해 중앙대 전통예술학부를 중심으로 한 대학생들이 대구뮤지컬페스티벌과 H-Star 페스티벌에서 주요상을 수상한 ‘적벽무’를 바탕으로, 판소리 합창과 현대무용이 결합된 젊은 혈기로 판소리 공연의 새 패러다임을 실험하고 나섰다.

도원결의·삼고초려·적벽대전 등 적벽가의 주요 장면을 도창의 솔로가 아니라 코러스들의 일사불란한 판소리 합창과 스펙터클 군무로 시청각적 확장을 도모한 것이 특징이다. 어려운 한자어와 스피드, 웅장한 소리적 특징 때문에 판소리 다섯 마당 중 가장 난이도가 높은 ‘적벽가’가 에너지 넘치는 대중 음악극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타악을 기반으로 아쟁·피리·대금 등의 국악기와 건반·베이스 등이 결합된 라이브 연주도 생동감을 더했다.

서사가 있는 극예술을 코러스 전체가 시종일관 한 덩어리로 무대를 끌어가는 방식이 다소 낯설게 다가오기도 한다. 정호붕 연출은 “모든 출연자가 역할 경중에 따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전원이 판소리 창자이자 연기자이자 무용수로서 독립적인 존재감을 갖게 만든 것이 컨셉트”라고 설명했다. 김봉순 안무가는 “판소리의 어려운 사설과 음률에 편안하게 다가가고자 합창과 움직임으로 풀었다”며 “새로운 음악과 무용극적 컨셉으로 현대화했지만 서양 뮤지컬 화성법이 아닌 전통의 리듬과 시김새를 살려야 하는 어려운 도전이었다”고 강조했다. 손 극장장은 “‘적벽’ 이후에도 11, 12월에 선보일 ‘창작ing’ 시리즈 2, 3탄을 준비중”이라며 “단일 콘텐트를 벗어나 연중 다양한 레퍼토리를 쌓아갈 예정으로, ‘적벽’ 역시 레퍼토리로 안착시키는 것이 목표”라고 했다.

4월에는 젊은 창작자들을 위한 공간 ‘정동마루’도 개관한다. 극장 편의시설로 이용되던 공간을 리모델링한 ‘정동마루’는 국악 전공 학생들을 지원하는 인큐베이팅 공간과 예술가와 관객의 거리를 좁히는 하우스콘서트, 쇼케이스 공간으로 운영된다. 4월 8일부터 시작되는 하우스콘서트에서는 소리꾼 박인혜의 ‘어리하리 이 내 마음은 오뉴월 버들마냥 스윙 스윙’ 등 판소리를 창조적으로 계승한 젊은 예술가들의 자유로운 판소리 노정기를 매주 접할 수 있다. ●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사진 정동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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