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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속으로] 개신교·불교·천주교·유교·성덕도 ‘이웃’ … “종교 간 벽 허문 전국 유일한 평화지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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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5개 종교 모여 있는 ‘안동종교타운’

안동종교타운. ① 대원사, 왼쪽 4층 건물이 ② 목화관, 뒤쪽에 ③ 유교회관, 그 왼쪽이 ④ 안동교회다. ⑤ 성당은 오른쪽. [안동=프리랜서 공정식]

안동종교타운. ① 대원사, 왼쪽 4층 건물이 ② 목화관, 뒤쪽에 ③ 유교회관, 그 왼쪽이 ④ 안동교회다. ⑤ 성당은 오른쪽. [안동=프리랜서 공정식]

수니파 무장세력인 이슬람국가(IS)의 테러가 유럽과 북미 대륙에서 잇따라 터지면서 ‘문명 충돌’과 ‘종교전쟁’의 그림자가 지구촌에 드리우고 있다.

근처에 둥지 틀고 잡음 없이 지내 #안동시, 화합 상징하는 공원 만들어 #스님 “타 종교와 어울리는 행사 준비” #신부 “종교 간 소통의 폭 넓히겠다” #상대 신앙 체험하는 건물도 설립 #“아직은 잘 활용되지 않아 아쉬워”

서로 다른 믿음을 강요하면서 야기되는 ‘신앙 충돌 시대’에 종교 간 화합을 모색하자는 취지에서 만들어진 ‘종교타운’이 주목받고 있다. 국내 첫 종교타운은 특히 유림(儒林)의 본고장 경북 안동에 들어서 의미가 각별하다. 안동시는 개신교·불교·천주교·유교·성덕도 등 5대 종교기관이 모여 있는 화성동·목성동 일대를 ‘안동종교타운’(3만840㎡)으로 이름 붙이고 지난달 22일 준공식을 했다.

종교타운은 안동 옛 도심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안동시청을 나와 서쪽 평화동으로 이어지는 2차로 서동문로를 따라가면 오른쪽으로 종교타운이 시작된다. 맨 먼저 골목 안쪽에 성덕도 안동교화원이 나온다. 골목에서 서동문로로 들어서면 천주교 서적과 용품을 파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바오로 딸’이 있다. 천주교 구역이다. 여기서 언덕길을 오르면 천주교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이 나온다. 도로를 따라 서쪽으로 다시 발걸음을 옮기면 이번에는 대한불교 조계종 대원사가 나타난다. 대원사 왼쪽은 경상북도 유교문화회관, 서쪽으로 더 내려가면 안동교회가 있다.

도로를 따라 건너편에는 승복·탱화 등을 파는 불교용품점이 있고 성경 등을 파는 가게도 대여섯 곳이 있다. 100m 남짓한 이 거리를 ‘종교의 거리’로 부른다. 이들 종교기관은 수십 년에 걸쳐 하나둘 둥지를 트며 이웃으로 동거해 왔다. 안동시는 이들 종교가 수십 년간 잡음 없이 동거해 온 데 주목했다. 김승학 안동교회 담임목사는 “서로 다른 종교가 한곳에 모여 있는 곳은 전국에서 유일하다”며 "오랜 기간 다른 종교가 공존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곳이 종교 평화지대로 이미 자리 잡았음을 보여 준다”고 말했다. 안동시는 2012년부터 종교기관 사이 어두운 골목길 등 자투리 땅을 사들여 작은 공원으로 탈바꿈시켰다. 이를 위해 유교와 불교는 담장을 허물고 성당은 장벽을 걷어냈다. 여기에 74억원이 들었다. 교회와 성당 사이에 들어선 화성동 ‘화성공원’은 종교타운의 상징 공간이다.

이들 5대 종교의 심벌을 새긴 3m 높이의 돌기둥을 원형으로 세우고 가운데 바윗돌에는 ‘19세기 안동읍도’를 새겼다. 원형 무대 바깥으로는 종교를 대표하는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천주교는 안동 주교좌성당, 불교는 안동 법흥사지 7층 전탑, 개신교 교회는 종탑과 한옥 예배당, 유교는 예안향교와 안동향교를 축소해 만들었다. 종탑과 한옥 예배당은 안동교회의 초기 모습을 보여 준다.

성당과 교회 사이에 조성된 ‘화성공원’. 종교타운에 동거 중인 5대 종교의 심벌을 돌기둥에 새기고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안동=프리랜서 공정식]

성당과 교회 사이에 조성된 ‘화성공원’. 종교타운에 동거 중인 5대 종교의 심벌을 돌기둥에 새기고 미니어처를 만들었다. [안동=프리랜서 공정식]

공원을 찾은 불교 신자 정형섭(74·안동시 안흥동)씨는 "어렸을 적부터 성당 자리가 누에 형상으로 터가 좋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 옆에 극락·천당 공원이 들어섰다”며 "앞으로 이곳에서 다른 종교 신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말했다. 대원사 등안 스님은 "올해 초파일(부처님오신날)에 이곳에서 다른 종교와 어울리는 행사를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주교좌성당 이희정 신부는 “그동안 초파일·성탄절에 (우리 성당이) 대원사와 화환을 교환해 왔다”며 “종교타운에서 종교 간 소통의 폭을 넓혀 보겠다”고 말했다. 안동시는 실제로 이들 종교가 서로 화합하고 상생할 수 있는 목화관(木花館)이란 4층짜리 별도 공간도 만들었다. 종교 간에 서로 소통하고 상대 종교를 체험하거나 지역봉사 등을 함께하자며 유교문화회관 앞에 지은 건물이다.

종교타운의 밑그림을 그린 남치호(72·행정학) 안동대 명예교수는 “공간은 마련됐는데 아쉽게도 아직은 잘 활용되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목화관 건물에는 불교의 단청 비슷한 문양이 들어가면서 사찰의 부속건물처럼 보여 교회 쪽이 발걸음을 끊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남 교수는 “종교 간 화합이라는 본래 목적을 살리기 위해서도 외관을 바꾸고 교계의 원로들을 찾아가 참여를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동종교타운의 5대 기관은 대부분 유서가 깊다. 안동교회는 1909년 북장로교 선교사 웰번과 황해도 소래교회 출신 목사 김영옥 등이 세웠다. 경북 북부지역 개신교의 효시다. 화엄사찰 대원사는 1923년 권오규 등 5인의 신도가 지었으며 6·25 때 훼손됐다가 몇 차례 중수됐다.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는 의성 고운사이지만 교구를 대표하는 포교 사찰이 대원사다. 목성동주교좌성당은 1927년 본당이 됐으며 고 김수환 추기경이 주임신부로 첫 사목 활동을 한 곳이다. 유교문화회관은 안동시교육청이 떠난 자리에 들어서 예절·서예·한자 등을 가르치는 도의 교육장이다. 또 성덕도는 유·불·선을 합친 신흥 종교로 52년 김옥재가 창설했다.

특히 성당 자리엔 풍요와 평화를 기원하던 사직단이 있었고 성덕도 뒤쪽은 유교의 중심 교육기관인 안동향교의 옛 터전이기도 하다. 권영세 안동시장은 “종교타운이 종교 간 상생과 화합을 바탕으로 테마 관광지로 발전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대만 세계종교박물관

대만 세계종교박물관

[S BOX] 대만 세계종교박물관엔 11개 종교 관련 유물 전시

안동종교타운처럼 종교를 테마로 삼아 만든 공원은 해외에도 적지 않다. 대만의 세계종교박물관과 싱가포르의 종교공원, 미국 홀리랜드, 일본 오색원, 중국 동방문화원 등이 좋은 사례다.

대만 세계종교박물관(사진)은 2001년 무생도량(無生道場)의 창시자인 신다오(心道) 법사가 대만 수도 타이베이에 지었다. 불교와 이슬람교, 고대 이집트 종교, 유대교, 기독교, 대만 민간 신앙, 힌두교, 시크교, 마야 종교, 도교 등 모두 11개 종교와 관련된 유물이 전시돼 있다. 싱가포르의 종교공원은 중국계·인도계·말레이계·유럽계 등 4대 민족·인종이 싱가포르를 건국하고 발전시킨 역사를 보여 주는 곳이다. 종교적인 소재나 주제를 직접 드러내지는 않지만 전시하는 생활풍속과 문화에 종교 요소가 많이 들어 있다.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는 홀리랜드라는 종교공원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십자가 사건이 중심 주제다. 이곳에는 성경 속 장면과 예루살렘 성지를 재현해 놓았다. 예루살렘 거리를 구경하듯 이곳저곳을 다니다 보면 예수로 분장한 배우가 예수의 행적을 재현하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미국 전역의 기독교인이 홀리랜드에 모여든다. 이 밖에 일본 오색원은 종교공원과 공동묘지, 성지가 한데 모여 있고, 일본 민족학박물관은 다양한 문화와 종교를 보여 준다.

안동=송의호 기자 yee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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