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매거진M] '식스센스'의 샤말란 감독이 돌아왔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M 나이트 샤말란(47) 감독의 명실상부한 부활이다. ‘23 아이덴티티’(원제 Split, 2월 22일 개봉)는, 샤말란 감독이 ‘더 비지트’(2015) 이후 2년 만에 선보이는 범죄 스릴러. 스물세 개의 다중 인격을 가진 남성 케빈(제임스 맥어보이)이 케이시(안야 테일러 조이)를 비롯한 10대 여학생들을 납치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23 아이덴티티’로 돌아온 M 나이트 샤말란

‘식스 센스’(1999) 이후 내놓는 작품마다 엇갈린 평가를 받았던 샤말란 감독이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해 와신상담한 흔적이 역력하다. 마지막 순간에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그의 수법이 먹힌 것일까. ‘앨프리드 히치콕 감독과 호러의 예술적 조합’(더 가디언)이라는 반응은 결코 빈말이 아니다.!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관련기사

‘식스 센스’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충격적 반전을 남긴 샤말란 감독. ‘반전’이란 장치는 그에게 ‘양날의 검’이었다. ‘식스 센스’는 당시 신인이던 샤말란 감독을 단숨에 스릴러 거장으로 급부상시켰다. 하지만 관객과 평단으로 하여금 그의 차기작이 ‘식스 센스’의 반전을 넘어설지에 주목하게 만들었다.

“‘식스 센스’ 때의 충격만 못하다”라는 평가는 아마 샤말란 감독이 그간 지겹도록 들었던 이야기일 것이다. 2000년대 후반에 접어들며 중·저예산 스릴러를 벗어나 대형 블록버스터 두 편을 연출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영화 규모가 커질수록 작품성과 흥행 성적은 반비례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2년 전, 반전이 벌어졌다. 500만 달러를 들여 만든 저예산 호러 코미디 ‘더 비지트’(2015)가,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북미 흥행 수익(6520만 달러)을 낸 것이다. 이 영화를 만들며 샤말란 감독은 자신이 한동안 잊고 지냈던 독립영화계의 ‘헝그리 정신’을 깨달았음에 틀림없다.

그 다음 작품인 ‘23 아이덴티티’의 제작비는 불과 900만 달러. 이마저도 작품의 독창성을 보장하기 위해 샤말란 감독이 직접 사비를 투입해 마련했다. 그의 고집이 먹힌 걸까. ‘23 아이덴티티’는 북미에서만 1억3000만 달러(2월 27일 기준)가 넘는 흥행 수입을 기록했다. ‘식스 센스’ ‘더 비지트’에 이어 세 번째로 제작비의 10배가 넘는 북미 흥행 수입을 거둬들인 것. 이는 J J 에이브럼스·크리스토퍼 놀런 등 할리우드 유명 감독들조차 이루지 못했던 성과다.

전작의 장점만 품은 야심작

‘23 아이덴티티’는 샤말란 감독이 전작에서 보여 준 요소들을 고루 담은 ‘종합 선물 세트’ 같다. 폐쇄된 지하 공간에서 벌어지는 스릴 넘치는 상황은 ‘빌리지’(2004)와 ‘더 비지트’로 이미 친숙한 세팅이다. 케빈의 스물네 번째 인격 ‘비스트’가 상상 초월의 능력을 발휘하는 대목은 ‘싸인’(2002)과 ‘레이디 인 더 워터’(2006)를 연상시킨다. 예상치 못한 전개로 공포를 안기는 방식은 우리가 ‘식스 센스’와 ‘해프닝’(2008)을 통해 보아 온 샤말란 감독의 장기다.

관련기사

샤말란 감독 영화에 대한 외신의 평가 중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비틀기(Twist)’. 그는 관객에게 익숙한 영화 문법을 충실히 따르는 듯하다가 일순간 보기 좋게 배반한다. 감금실의 자물쇠를 해체하려 고군분투하던 두 소녀는 결국 그곳을 벗어나지 못하고, 케이시의 유일한 해결책처럼 보였던 산탄총조차 결정적 순간에는 별 도움이 안 된다.

‘23 아이덴티티’는 샤말란 감독의 전작들처럼 기존 장르 공식을 응용하고 변주하며 진화해 간다. 정신 장애가 있는 캐릭터를 폭력적으로 그렸다거나, 소녀들의 수난을 선정적으로 묘사했다는 윤리적 비판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는 대개 긍정적이다. 우리가 알던 샤말란 감독이 돌아온 것이다.

차기작이 기대되는 이유

(왼쪽부터)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제임스 맥어보이

(왼쪽부터) M 나이트 샤말란 감독 & 제임스 맥어보이

탄탄한 스릴러인 ‘23 아이덴티티’는 엔딩신에서 또 한 차례 관객을 놀라게 한다. 바로 샤말란 감독 초기작 ‘언브레이커블’(2000)의 주인공, 데이빗 던(브루스 윌리스)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23 아이덴티티’가 ‘언브레이커블’과 동일한 세계관을 공유한다는 걸 알린 순간이다. ‘샤말란식 초자연(혹은 수퍼 히어로) 스릴러 시리즈’가 탄생한 셈이다. 인간의 본성과 잠재력에 대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언브레이커블’과 ‘23 아이덴티티’는 매우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원래 케빈 자체가 샤말란 감독이 ‘언브레이커블’에 등장시키기 위해 만든 캐릭터였다니, 더할 나위가 없다. 초인적 힘을 가진 경비원 던이 향후 ‘무리들(The Hordes)’로 불리는 케빈의 적대적 인격들과 싸우게 될지는 미지수다. 다만 샤말란 감독의 향후 프로젝트가 ‘언브레이커블’ 세계관에 속한 작품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의심의 눈초리를 완전히 거두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거대 자본이 투입된 작품에서 매번 고배를 마셨던 샤말란 감독의 이력을 생각하면 더 그렇다. 이제 샤말란 감독에게 남은 과제는, 1억 달러 이상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형 블록버스터에서도 흥행과 호평,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것일 테다. 하지만 정작 그는 이런 부담이 두렵지 않은 듯한 태도다. “‘식스 센스’를 만든 후 ‘거장’이라는 평가를, ‘싸인’ 개봉 당시 ‘제2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라스트 에어벤더’(2010)를 찍고 나선 ‘쓸모없는 감독’이 되기도 했다. 차기작에서 다시 쓸모없는 감독이 될지 모른다(웃음). 그럼에도 이런 리스크를 기꺼이 떠안고, 나 스스로 재미있는 영화를 만들려고 한다. 그것이 영화를 통해 나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므로.” 샤말란 감독이 지금껏 필모그래피를 통해 보여 준 굴곡은, 어쩌면 그가 할리우드 시스템 내에서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옷을 찾아가는 하나의 과정이었을지 모른다.

고석희 기자 ko.seokhee@joongang.co.kr 사진=UPI 코리아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