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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링돌이 먼저 놨다 … 세계 정상 디딤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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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한국주니어대표팀의 막내 우경호를 이기복과 성유진·이기정·최정욱(왼쪽부터)이 번쩍 들고 있다. [의성=프리랜서 공정식]

한국주니어대표팀의 막내 우경호를 이기복과 성유진·이기정·최정욱(왼쪽부터)이 번쩍 들고 있다. [의성=프리랜서 공정식]

지난 26일 강릉컬링센터에서 막을 내린 세계주니어컬링선수권대회 우승 직후 한국남자주니어대표팀 이기정(22)은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컬스데이(컬링+걸스데이)요? 남자컬링도 있어요.”

‘세계선수권 우승’남자 주니어팀 #이기정·기복 쌍둥이 포함 선수 5명 #코치는 연봉 1억 증권맨 관두고 지도 #화끈한 남자 경기, 외국선 더 인기 #“내년 평창 도전, 두려울 게 없다”

사실 한국에서 컬링 하면 여자다. 2014 소치 겨울올림픽이 계기였다. 당시 여자대표팀은 10개 팀 중 8위(3승6패)에 머물렀지만, 실수를 해도 서로 격려하는 모습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다. 경기 중 선수들끼리 나눴던 “언니 괜찮아요”라는 말은 유행어가 됐다. 때마침 인기를 끌던 걸그룹 ‘걸스데이’에 빗대 ‘컬스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여자에 밀리던 남자가 이번에 반전의 계기를 마련했다. 세계주니어선수권 결승전에서 한국 남자는 미국을 5-4로 꺾고 우승했다. 남녀 주니어와 시니어를 다 합쳐 세계선수권 우승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전까지 세계선수권 최고성적은 여자주니어 준우승이다.

시상식에서 기뻐하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강릉=뉴시스]

시상식에서 기뻐하는 선수들과 코칭스태프. [강릉=뉴시스]

2018 평창 겨울올림픽 테스트이벤트로 열린 이번 대회에는 남녀 각각 10개국이 참가했다. 연령 제한은 1995년 7월 이후 출생. 한국(경북컬링협회)은 스킵(주장) 이기정과 쌍둥이 동생 이기복(22), 최정욱(18), 성유진(20), 우경호(17)가 호흡을 맞췄다. 장반석(35)감독과 국가대표로 활약했던 연봉 1억원의 삼성증권 프라이빗뱅커(PB) 출신 임명섭(34) 코치가 이들을 지도했다.

한국은 예선을 1위(8승1패)로 통과했지만, 1~2위가 맞붙은 플레이오프에서 미국에 졌다. 준결승전에서 스코틀랜드를 11-4로 대파한 한국은 결승전에서 미국을 5-4로 꺾고 우승했다. 9엔드까지 4-4 동점이었다가 10엔드에 1점을 보탠 극적인 우승이었다.

컬링은 빙판 위에서 스톤(돌)을 밀어던진 뒤 브룸(빗자루)으로 빙면을 닦아 하우스(동그란 표적) 중앙에 가깝게 붙이는 팀이 이기는 경기다. 팀당 4명이 출전하며 엔드마다 각 팀이 8개의 스톤을 던져 승부를 가린다. 경기는 10엔드까지다.

세계적으로는 남자 경기가 더 인기다. 임명섭 코치는 “배구와 비슷해서, 여자경기는 아기자기한데 반해 남자경기는 화끈하다. 남자배구의 스파이크처럼 힘이 넘쳐 상대 스톤 2개를 한 번에 쳐내는 ‘더블테이크’도 많다. 또 10엔드의 극적인 뒤집기도 자주 나온다”고 설명했다. 남자경기는 브룸으로 패블(얼음알갱이)를 닦아 스톤을 더 멀리 보내는 ‘스위핑’이 승부를 좌우한다. 강팀이 많은 유럽에는 근육질 선수들이 많다. 이기복은 “우리도 스위핑을 위해 근육을 키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기정-기복 형제는 나란히 키 1m83cm에 몸무게 80㎏다.

선수들의 댑 댄스 세리머니.

선수들의 댑 댄스 세리머니.

한국 선수들은 우승 후 양팔을 한 쪽으로 뻗는 축구선수 손흥민(25·토트넘)의 힙합 세리머니 ‘댑 댄스(Dab Dance)’를 따라했다. 성유진은 자신의 우승 공약대로 경포대 앞바다에 입수했다. 이기복은 “남자컬링은 화끈하다. 팬들이 경기장을 많이 찾아와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 오빠부대면 좋고, 삼촌부대라도 환영한다”고 말했다.

또 하나. 팬들이 원한다면 핑크색, 그것도 핫핑크색 경기바지를 입겠다는 계획이다. 세계컬링연맹(WCF)은 짙은색 경기바지를 권장한다. 하지만 노르웨이 남자시니어팀은 화려한 체크무늬 바지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그걸 본딴 것이다.

목표는 역시 내년으로 다가온 평창올림픽이다. 이기복은 남자 일반부로, 이기정은 믹스더블(혼성 2인)로 올림픽 대표선발전에 나선다. 이기복은 “이번 세계주니어선수권 우승으로 두려울 게 없다. 형제가 나란히 평창에 가서 부모님께 효도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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