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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유학, 카투사 출신 영어능통자 '대리선수'로 1억 챙겨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외국계 제약회사에 다니는 A씨(30)는 '투잡족'이다. 평일에는 회사에 다니고 주말에는 영어 대리시험을 봐주는 이른바 '대리 선수'였다.
미국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의 한 유명 사립대에서 생명공학을 전공한 A씨는 토익을 만점 받을 정도로 영어를 잘했다. 군복무도 카투사로 했다.
2013년 대학 졸업 후 외국계 제약회사에 취직한 A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리 선수로 나섰다. 군 시절 알았던 동료가 대리 선수로 활동하면 쉽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다. A씨는 “연봉 5000만원을 받았지만 유흥비를 마련하려고 토익 대리 선수로 나섰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고 한다.
그는 인터넷에서 시험 의뢰자를 물색했다. 영어시험이 어렵다고 얘기하는 네티즌이 주요 타깃이었다. 그는 비밀 댓글을 남겨 대리시험을 제안했다.
그렇게 해서 2013년 9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30명의 대리시험을 봐주고 1억원을 벌었다. 시험을 봐줄 때마다 400만~500만원을 받았다. A씨는 이 돈을 대부분 유흥비로 썼다.
 A씨는 경찰의 단속을 피하기 위해 첨단장비를 이용해 다수의 응시자에게 정답을 불러주는 대리시험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1대1로 의뢰자를 선정한 뒤 자신의 얼굴과 의뢰자의 얼굴을 컴퓨터로 반반씩 합성한 사진으로 자동차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시험장에서 감독관을 속였다. 자세히 보지 않고는 응시자와 의뢰자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진은 정교했다.
 A씨는 또 갑자기 점수가 크게 오르면 토익위원회에서 경찰에 수사의뢰한다는 사실을 알고 시험성적을 조금씩 올려줬다. 턱없이 시험성적이 낮은 의뢰자에게는 여러 차례 시험을 보게 한 뒤 그때마다 돈을 받고 대리시험을 봐줬다.
 하지만 3년 넘게 범행해 온 A씨는 인터넷 댓글을 보고 수사에 나선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경찰은 A씨를 업무방해 혐의로 27일 검찰에 구속송치하고 대리시험을 의뢰한 20명을 같은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나머지 의뢰인 10명은 조사하고 있다. 의뢰자는 대부분 승진·취업을 원하는 직장인·학생이었다.
 김병수 부산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장은 "1대1로 계약해 대리시험을 봐주면 적발하기 어렵다"며 "시험 응시자를 지문으로 확인하는 방식이 대리 시험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데 비용 문제 때문에 도입이 안되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이은지 기자 lee.eunji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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