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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삼성, 정경유착 차단 … 관공서 상대 업무 로펌에 맡길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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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삼성그룹이 최순실 사태 이후 개혁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그 일환으로 미래전략실 핵심 기능인 ‘대관 업무’를 법무법인(로펌)에 위탁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삼성 관계자는 “관공서와 국회를 상대로 한 업무를 투명하게 진행하기 위해 로펌이나 에이전시에 아웃소싱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26일 밝혔다.

정책·입법동향 파악, 의견 개진 등 #미래전략실 담당하던 업무 이관 #고액 기부 이사회 의결 이은 조치 #“글로벌 스탠다드로 거듭나게 될 것”

대관 업무는 기업이 정부 부처나 국회를 상대로 경영 활동에 영향을 주는 정책과 입법 동향을 파악하고 의견을 개진하는 활동을 뜻한다. 대관업무는 정보 수집 기능과 맞물려 있는 데다 장시간에 걸쳐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원활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기업 내에서 핵심 역량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다만 공무원이나 국회의원들을 상시로 접촉한다는 점에서 “정경유착의 고리가 될 수 있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기업들이 이번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된 것도 대관 업무가 창구 역할을 했다.

그간 재계에서는 삼성이 미전실을 폐지할 경우 대관 업무를 어떻게 이관할지를 놓고 주목해왔다. 기획·홍보·인사 등은 각 계열사로 넘길 수 있지만, 그룹 전체의 입장을 행정부나 입법부에 전달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업무는 성격상 계열사로 이관이 어려워서다.

삼성 관계자는 “현재 대형 로펌들 가운데 정부 관련 업무를 잘 아는 변호사들과 전직 관료 출신들을 묶어 ‘입법 지원 활동팀’을 만드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며 “이들 중 한 곳이 삼성의 대관 업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률 전문가들은 로펌이 삼성의 대관 업무를 대행할 경우 정치권력과 기업의 유착이라는 고질적 관행을 깨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정보기술(IT)분야 소송 전문가인 법무법인 테크앤로의 구태언 변호사는 “민원이나 청원, 공청회를 통한 의사 전달처럼 국민이 정부를 상대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합법적인 방법이 여럿 있다”며 “기업들도 이 같은 절차를 변호사를 통해 진행하게 되면 합법 테두리 안에서 대관 업무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원한 다른 법률 전문가는 “공무원이나 국회의원의 성향을 파악하고 정책 영향을 설명하는 일은 외국 어느 기업이든 일상적으로 진행한다”며 “그러나 외국은 로비스트 활동이 합법적이어서 문제가 없었지만 국내에서는 이 기능을 기업 내(인하우스)에 두다 보니 자칫 정경유착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는 대관 업무의 로펌 이관을 글로벌 스탠다드를 내재화하는 행보로 보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이 구설수에 오를 소지를 사전에 차단한다는 점에서, 10억 이상 기부금을 이사회 의결 거치기로 한 계획과 함께 강력한 쇄신 대책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전실 해체를 포함한 쇄신안 발표는 다음달 중 나올 전망이다. 삼성 관계자는 “일정을 조율 중이나 ‘늦출 이유가 없다’는 게 내부 기류”라며 “계열사별 자율경영과 이사회 활동을 강화해 나간다는 게 주요 내용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룹 안팎에서는 미전실이 담당했던 계열사 간 업무조정, 경영진단, 채용, 인수합병(M&A) 기능을 삼성전자·생명·물산 등 3대 주력 계열사로 분산 이전하고, 그룹 공통 사안에 대해서는 계열사 CEO(최고경영자) 회의 등을 통해 풀어나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삼성은 또한 오는 28일 부장급 이하 직원의 승격 인사를 발표하는 등 기업활동 정상화를 위한 조치를 하나씩 실행할 계획이다. 승격 인사와 함께 기존 7단계였던 직급을 4단계로 단순화하는 인사제도 개편안도 시행한다. 지난해 6월 발표한 내용으로 원래 올 3월 시행 예정이었다. 사원1(고졸)·사원2(전문대졸)·사원3(대졸)·대리·과장·차장·부장 등 7단계 직급이 사라지는 대신 개인의 직무역량 발전 정도를 나타내는 CL(Career Level) 1∼4 체제가 도입된다. 전통적인 직급 명이 폐지되고 직원 간 호칭은 이름 뒤에 ‘님’자를 붙여 부르게 된다. 다만, 팀장, 그룹장, 파트장, 임원은 직책으로 불리게 된다. 임원 승진 인사는 향후 사장단·임원 인사 때 함께 발표될 전망이다.

박태희·임미진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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