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솔 입국소식에 300명 달리기 경쟁 #현지 시민들 “한국 ‘런닝맨’ 촬영인가요?”
이날 오후 베트남 국적 여성 도안티흐엉이 암살 용의자로 경찰에 잡혔다. 생각보다 용의자 검거가 빨라 놀랐다. 배후는 따로 있고 도안은 꼬리 자르기용인가…? 비슷한 시각, 강철 말레이시아 주재 북한 대사가 김정남 시신이 안치된 쿠알라룸푸르 병원 부검실을 찾았다. 어렴풋하지만 확실히 뭔가 큰 소용돌이가 감지됐다.
#말레이에 나타난 양치기 소년
가짜뉴스가 글로벌하게 판을 치더니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20일 오후 기자들 사이에선 김정남 아들 한솔이 말레이시아에 입국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소문의 진원지는 메신저 어플리케이션 ‘왓츠앱’이었다. 마카오발 AK8321편을 타고 오후 7시40분에 도착한다는 구체적인 내용의 현지 보도도 이어졌다.
내외신 기자 200~300명이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과 쿠알라룸푸르 병원으로 가 ‘뻗치기’를 시작했다. 나는 공항으로 갔다. 한 명이 뛰면 수백명 기자가 우르르 뛴다. 다들 뛰면서 선두 기자에 “Why? Why?(왜? 왜?)”라고 외친다. 그러다 그 기자가 뒤를 보며 역시 “Why?”라고 말한다. 다들 허탈한 표정으로 출국장 앞에 복귀.
이렇게 이유 모를 공항 달리기가 4번 이어지자 숨이 턱끝까지 차오른 기자들은 욕설을 내뱉기 시작. 친근한 “X발”부터 외신 기자들의 “FXXX”까지…. 말레이 기자들과 일본 기자들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는데 무슨 말인지 알 것 같다. 수백명 기자가 우르르 뛰는 장면을 보는 공항 이용객들은 신기한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이거 ‘런닝맨’ 촬영인가요?”라는 소리가 들렸다. 한류가 세긴 세구나….
김한솔 입국설은 경찰청장이 직접 오보라고 확인해주면서 일단락됐지만 23일에도 양치기 소년은 또 나타났다. 오전 9시 30분 북한 대사관에서 기자회견을 연단다. 서둘러 택시를 타고 대사관으로 향했지만 이 역시 낭설. 바깥으로 나온 대사관 직원을 붙잡고 “기자회견 합니까?”라고 물었더니 “그런 계획 없습니다”란다. 쿠알라룸푸르에 같이 온 신경진 선배는 “말레이에 늑대가 자주 출현하는구만”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신 선배는 김정남이 자신의 가게 단골이라고 주장하는 주인 A씨를 만났다. 내가 말레이에 온 바로 다음날 접촉했던 인물이다. 당시 휴대전화 번호를 가장 먼저 알아내 단독 인터뷰를 시도했지만 그는 거절했다.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시킨 종북 언론과는 절대 인터뷰 안하겠다"는 것이 이유였다.
그런데 며칠 뒤 A씨가 종북 언론으로 규정했던 타사가 단독 인터뷰를 했다며 기사를 냈다. A씨에게 문의하니 “만나지도 않고 쓴 기사다. 소설을 써댔다”며 분개했다. 내가 ‘물을 먹은 것’(언론사에서 기사를 낙종했다는 뜻으로 쓰는 은어)일까. 어느 한쪽이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쿠알라룸푸르에서>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